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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이외수, “그림 팔려서 부끄럽고 기쁘다”

by 밥이야기 2009.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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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렬의 사회로 진행된 자선경매에서 이외수의 선화가 1,000만원에 낙찰.(사진출처: 이데일리)

 

감성지수 100점을 주고 싶은  소설가 이외수. 어린이 재단에 기부한 자신의 그림이 자선경매에서 1,000만원에 팔렸다고 합니다. 연말이 다가오는 기부시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웃을 위해 십시일반 기부를 하지요. 복지 예산이 깎인 현실에서 자선단체나 시민단체에, 자발적 기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할 때입니다.

 
이외수 선생은 그림이 낙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트위터에 단상을 남겼습니다.

  “개그맨 이홍렬씨가 해마다 주관하는 불우 어린이 돕기 자선경매를 통해 제 선화가 최고 경매가 1,000만원에 낙찰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제 미천한 솜씨가 불우한 어린이들의 겨울나기에 작은 보탬이 되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기쁩니다”

 
나눔은 자기 과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받는 사람과 눈높이를 같이 해야 합니다. 진정 아름다움은 낮춤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나눔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자기과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부를 하더라도 마음이 담겨 있지 않으면 또 다른 차별이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들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지, 역지사지, 들여다보고,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외수 선생이 남긴 글은 기쁩니다. 돈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도 나눌 수 있습니다. 한 편의 시가 그렇고 한 편의 그림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언론에서 너나 할 것없이 저소득계층을 위한 나눔행사를 떠들어 댑니다. 받는자와 나누는 자는 평등한 상태, 마음가짐에서 손을 잡아야 합니다. 빈곤의 문제를 그림잡기 위해 만들어 내는 언론보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자신이 나누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나눌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멀리 볼 필요없이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마을 만 보아도 됩니다. 자선과 베품이 아니라 나눔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정호승 시인에게 청탁 했던 나눔의 글을 소개하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

 

빈손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정호승

 

사람은 태어나서 엄마의 손부터 먼저 잡는다.

아기는 엄마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단 한시도 살아갈 수가 없다.

엄마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위험한 데로 기어가 마냥 곤두박질치고 만다.

걸음마를 배울 때에도 엄마의 손을 따라 배운다.

토닥토닥 토닥여주는 엄마의 손을 통해 아기는 크나큰 사랑과 평온을 얻는다.

엄마의 손은 바로 생명의 손이며, 신의 손을 대신해 준다.

 

내게도 나를 길러준 어머니의 손이 있다.

내가 눈물을 흘릴 때 어머니의 손은 언제나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내가 상처받고 고통스러워 할 때 어머니의 손은

언제나 내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다.

아마 이러한 어머니의 손이 없었다면

오늘 한 인간으로서 나는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손은 참으로 부지런한 손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손이다.

아흔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손에 호미를 놓지 않으신 것처럼

어머니 또한 손에 일거리를 놓지 않으신다.

여든이 된 내 어머니의 손은 지금도 바느질을 하고

재봉틀을 돌리고 걸레를 빨고 밥을 짓는다.

 

손은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할 때 아름답다.

놀고 있는 게으른 손은 추악하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지도 않는 손을 정성껏 가꾼다.

그런 손은 겉으로는 아름다운 것 같으나

실은 아름다움을 상실한 가공의 손이다.

못자국이 난 예수의 손에도 십자가에 매달려 못 박히기 전에는

목수로 일하면서 생긴 굳은 살이 박여 있었다.

 

나는 누군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손을 먼저 살펴본다.

그것은 그의 삶의 전부를 말해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악수를 해보고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여러 가지 감도를 통해

그가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 어떠한 삶을 살아왔으며

성격 또한 어떠한지를 잘 알 수 있는 것은

손이 바로 인간의 마음의 거울이자 삶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의 손처럼 다른 사람의 눈물과 상처를 닦아주는 손을 소중히 여긴다.

가을 들판의 볏단처럼 고요히 머리 숙여 기도하는 겸허한 손을 소중히 여긴다.

어릴 때 나는 교회에 나가시는 어머니를 자주 따라가본 적이 있다.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나가셨다.

교외희 차디찬 마룻바닥에 꿇어앉아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기도하던 어머니의 그 겸손한 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집 안방에 걸려 있던 예수의 사진 또한 마찬가지다.

골고다 언덕에서 가시관을 쓴 머리에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하늘을 우러러 간절히 기도하는 예수의 손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눈물과 상처를 닦아주고 어루어만져 주기 위한

사랑의 손이다.

 

나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손이 있다.

그것은 그림 속의 손으로, 한 조각 빵을 앞에 두고 식사하기 전에

눈을 감고 고개 숙여 기도하는 한 노인의 손이다.

누구의 그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림 속의 노인은 붉은 수염이 길게 자라 있고,

식탁 위에는 성경과 안경이 놓여 있다.

나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한 조각 빵 앞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한 인간의 겸손하고 경건한 손을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 화순 운주사 석불들의 손을 빼놓을 수 없다.

천불천탑이 있었다는 운주사에는 아직 70여 기의 석불들이 남아 있다.

여인인 양 다소곳이 가슴께로 두 손을 모으고

사랑하는 임을 영원히 기다리고 있는 듯한 석불들의 모습은

내게 기다림의 진실된 자세를 가르쳐 준다.

와불님을 뵈러 올라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한 좌불 석불은

텅 빈 두 손바닥은 하늘을 향해 드러내놓고 감은 듯한

두 눈은 멀리 영원을 바라보는 듯해서 자못 감동적이다.

세상사 모든 욕망을 벗어버린 듯한 그 석불의 모습에서

무엇을 포기하고 오늘을 살아야 하는지를 뒤미처 깨닫는다.

 

사람은 빈손으로 태어나서 빈손으로 간다.

우리는 이 말을 늘 잊고 산다. 그러나 아무리 잊고 살아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모든 것을 다 놓고 가야 한다.

손에 아무리 많은 것을 지녔다 하더라도 검불 하나라도

지니고 가지 못한다.

내가 어머니한테서 태어나 최초로 어머니의 손을 잡을 때에도

빈손이었지 않았는가.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어야 한다.

내 손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 놓거나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지 말아야 한다.

내 손에 다른 무엇이 가득 들어 있는 한 남의 손을 잡을 수는 없다.

소유의 손은 반드시 상처를 입으나

텅 빈 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그동안 내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얼마만큼 잡았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내가 처음 아버지가 되어 아기의 손을 잡았을 때

아기는 내 손가락 한 끝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나도 그러한 아기의 손을 지니고 싶다.

 

  365일 나눔이 이어지면 좋겠지만........

  기부 시즌.

 추운 겨울나기를 위해 어려운 삶을 꾸려가고 있는 이웃을 위해 따뜻한 손을 건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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