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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밥

정운찬, “천만 원짜리 개망신“

by 밥이야기 2009.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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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지하가 조선일보 시론에 “천만 원짜리 개망신‘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정운찬씨가 기업인으로부터 받은 천만 원에 대한 생각을 피력했다. 한마디로 ”돈 받은 것 문제없다“는 글이다. 인사청문회에서 ”돈을 받았느냐“라는 야당의원의 질문에 "넵" 솔직히 대답했다는 것이다. 김지하 시인은 ”안 된 것은 자기들 자신이 대권 후보로까지 밀었던 사람을 천만 원으로 잡아먹겠다고 벼르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이다“며 인사청문회 안 밖의 여론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칭 진보주의자들은 누구일까? 시인 김지하는 자칭 보수주의자인가? 자칭 중도개혁주의자인가?

 

얼마는 목이 탔으면 이런 막말을 하시는 걸까? 왜 다시 타는 목마름으로 조선일보에 글을 보냈을까? 만약 인사청문회에서 정운찬씨가 돈을 받았다고 자발적 실토를 했으면 이야기는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고백이 아니라 야당의원의 추궁에 답한 것 아닌가? 드러난 사실에 대해 묻는 말인데 “아니다”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시인 김지하는 정운찬을 한 번 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정운찬 씨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는 누구를 두둔해주거나 있는 사실을 덮어주자고 만든 제도가 아니다. 김지하씨 글대로라면 인사청문회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

 

한국 실천문학의 길을 열었던 김지하. 시인이 겪어야만 했던 지난 시절, 고행의 길을 거슬러 살펴보면, 이름만 들어도 숙연해 질 때가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억지 같지 않은 억지 글을 썼을까? 초야에 묻혀 있다 보니 답답해서일까? 조명을 받고 싶어서일까? 시인은 지금 살고 있는 곳을 알리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어도 알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렇다면 욕설과 막말이 오가는 현실의 장에 입질과 글 질을 할 필요가 없다.

 

정운찬씨가 받은 천만 원이 시인의 눈에는 크게 보이지 않아서일까? 물론 몇 억 몇 십억 대의 돈이 오간 불법로비 금액에 비해서 천만 원은 적은 금액이다. 불법이다면 물러나면 되고 법의 심판을 받으면 된다. 천만 원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넘어갈 수 도 있다. 정운찬씨는 총리예정자로 임명되기 전부터 정치권에서 러브콜을 보낼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다. 돈과 권력은 우리 사회의 쌍두마차다. 사람인 이상 돈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고, 그런 연이 이어져 신세를 갚아야 되고 오해를 만들어 낸다. 그 도가 심하면 로비와 비리로 직결되는 것 아닌가? 옛말에 '배나무밭에선 갓끈도 고쳐매지 말라했다" 오해 받거나 의심 받을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비판 받을 여지가 있으면 비판 받아 마땅하다. 괘심죄에 걸려 야당이 정운찬죽이기에 나섰다고, 있는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미화할 일인가?

 

좋다. 김지하라는 굵직한 이름만으로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도 있다. “그들이 지난 집권 5년 동안 얼마나 많은 나랏돈을 처먹었는지 너무도 잘 아는 나를 시골로 낙향해버리게 만든, 바로 그 장본인들이...“ 김지하가 이야기하는 지난 집권 5년은 결국 참여정권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내가 잘못 해석한 걸까? 얼마나 많은 나랏돈을 처먹었는지 밝혀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고 마치 지난 정권은 많이 처먹었으니, 천만 원은 아무 것도 아니 다고 넘어 가야 하나? 조선일보는 아예 글 첫 발문으로 이 대목을 뽑아 실었다. 조선일보답다. 이게 바로 조선일보의 교묘한 편집기술이다.

 

시인이여. 정운찬씨는 천만 원짜리 개망신을 당하고 총리직에 오르겠지만, 당신은 조선일보에서 받은 원고료 xxx짜리 개망신을 당하려고 작정을 한 것 이다. 정운찬씨는 언제든지 정치권의 바람에 따라 사라질 수 있는 사람이지만, 시인이 남긴 글과 정신은 오래가지 않는가? 왜 시인의 이름을 포기하면서까지 막글을 쓰시는가?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시라.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촛불시위 때의 발언과 황석영의 이명박 합승열차 때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한마디로 중구난망이다. 차라리 세상 보기 싫다면 침묵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진보는 더 나은 삶을 향한 지향이다. 자칭이 많아져도 상관없다. 문제는는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권력의 불빛을 따라가는 불나방같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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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 시인이 조선일보에 쓴 "천만원짜리 개망신"은 따로 원문 링크를 걸지 않았습니다.
  원문을 꼭 읽어보고 싶으신 분은 포털에서 '김지하나 컬럼 제목타이틀'로 확인해 보셔서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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