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5일)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이하 사통위)가 시간강사 폐지를 담은 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이제 시간강사는 고등교육법상 교원으로 인정받게 된다고 합니다. 아울러 강의료도 시간 당 4만원에서 8만원 가까이 오를 것 같네요. 이 소식을 들으면서 2008년 미국에서 자살한 한 시간강사와 지난 5월 한 지역(광주)에서 연탄불을 피워 놓고 자살한 한 시간 강사의 유서가 떠오릅니다.
시간강사.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매번 시간강사의 자살 소식을 보고 들을 때 마다 시간강사 문제는 갑자기 달아오른 양은 냄비 뚜껑처럼 달그락거리지만, 결국 시간의 무게는 모든 것을 눌러 덮어 버립니다. 우리는 작년에 일어난 한 시간강사의 자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멀고 먼 이국의 땅 미국, 딸 앞에서 음독 자살 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강사 한경선 씨의 유서를 오늘 다시 읽어 봅니다. 그녀가 담긴 것은 유서 3장과 딸, 서울 만리동의 다세대주택 옥탑방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교수자리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합니다. 학력과 실력만 좋다고 교수가 될 수 없는 사회. 대학교마다 학연, 혈연, 지연으로 얽힌 먹이 사슬에서 최상위만 살아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돈도 있어야 합니다. 상아탑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이렇듯 수많은 난제를 통과해야 합니다. 상아탑 또한 사회 권력의 작은 축소판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을 보면 영화의 주요 소재는 아니지만, 시간강사(주인공)가 교수(전임강사)가 되기 위해 학교에서 나누는 대화를 보면(교수에게 양주를 사드린다든지, 돈 이야기 등), 잠시나마 시간강사의 단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 스쳐가는 짧은 화면처럼, 시간강사 문제는 이렇듯 언제나 그때뿐이었습니다. 근원적인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시간강사에 얽힌 애환은 너무나 많습니다.애환이 유머버전으로 희석되거너, 애환을 애환으로 덮어버려서는 안될 때가 왔습니다. 영화 ‘강원도의 힘’처럼 시간강사가 교수가 되는 길은 현실에서는 너무나 먼 길입니다. 시간강사가 대학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한다면 보다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시간강사도 법적, 제도적으로 전임강사에 준하는 교수의 자격을 부여해야 합니다. 보따리 장사도 격이 있지요. 지성과 지혜를 파는 사람들을 홀대한다면 대학교의 큰 대자를 떼야 합니다. 대학의 경쟁력 강화는 결국 교수의 질로 평가 받아야 합니다. 시간강사 월급을 올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정착 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고인이 된 한경숙 씨의 유서의 일부분을 읽어 보면서, 정부와 정책입안자들은 현재 한국 대학이 처한 현실과 시간 강사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았으면 합니다.
이 글을 받으실 때, 저는 이곳 오스틴에서 그토록 바라던 평온한 휴식을 비로소 얻게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2004년 공부를 마치고 귀국 후 정신 없이 일하며 보냈던 처음 1년을 제외하고는, 제정신을 갖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떤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넘으려 발버둥 거리며 만 4년을 보낸 후 이곳 오스틴에서 비로소 갈망하던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삶을 마감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은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그럴듯한 구호나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사항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귀국 초에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듯, 열심히 강의하고 논문 쓰면 학교에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란 마음으로 하루를 쪼개어 고시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며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열심히 논문을 쓰며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선 이러한 연구업적과 강의경력과는 다른 무언가가 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뜻 맞는(이해가 맞는) 몇몇 학교들끼리 연합해서 압력을 가하기 위해 한 특정인의 학교 임용을 가로막아, 그의 학문적 업적이나 발전을 저해함으로써 경쟁에서 도태되어 결국엔 그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부양가족을 지닌 경제적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다년간 시간강사로 버티기는 불가능하고, 강의교수로 지내면서 임용에 필요한 정도의 논문을 쓰기는 사실상 거의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규모가 비교적 적은 이곳에서 기업체의 불공정 단합처럼 몇몇 학교들의 이해단합이 더욱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며, 이는 공정한 경쟁에 기초한 상생발전의 원리를 거스르는 것으로, 개인과 학교 그리고 나아가 국가와 학문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음이 분명할 것입니다. (....) 현 체제에서 최고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 대학에서 행하는 모순과 불공정한 처사는 같이 일하던 동료교수의 파면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의 파면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학교측의 주장들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보이고, 이의 행정적, 법적절차를 위해 그들이 제시한 서류들과 주장들을 보고 전해 들으면서, 이 기관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했습니다. 그 동안 겪은 이러한 부조리와 모순은 열심히 연구와 강의를 하리란 초기의 순수한 열정에서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애초의 희망과 비전을 접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저와 같은 이가 있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기원을 위해 두서없이 이 글을 써서 전해 드립니다.
2008년 2월 25일
텍사스 오스틴에서 한경선 드림
대학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겁니까? 원론적인 질문에 원론적인 답변은 " 대학교의 학생과 교수" 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원론적인 답변과 다르게 돌아 가고 있습니다. 이념의 잣대로, 권력의 잣대로, 강자대 약자의 잣대로 잘못된 법과 제도의 잣대로... 학생들을 대학교라는 큰 기계에 등록금만 채워 넣는 코인으로 생각한다면...오산입니다. 시간강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5월 말에 목숨을 끊은 한 강사의 유서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교수 한 자리가 1억 5천, 3억원이라는군요, 저는 두 번 제의 받았습니다. 대략 2년 전 전남 모 사립대학 6천만원, 두 달 전 경기도 모 사립대학 1억원입니다. 썩었습니다. 수사 의뢰 합니다. 교수님과 함께 쓴 논문이 대략 25편, 교수님 제자를 위해 박사 논문 1편, 한국학술진흥재단 논문 1편, 석사 논문 4편, 학술진흥재단 발표 논문 4편을 썼다. 같이 쓴 논문 54편 모두 제가 쓴 논문으로, 교수님은 이름만 들어갔다. 나는 당신의 노예가 아닙니다. 부끄럽습니다. 학자로서의 인생을 살려고 했던 결과가 이 지경으로 추락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나는 스트레스성 자살입니다“(이명박 대통령님께 드리는 글/ 유서 중)
아무쪼록 사회통합위원회가 마련한 시간강사 처우 개선이, 각계 전문가들과 이해 당사자들의 지혜를 모아, 개선안이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마치 처우개선을 빌미로 시간 강사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시간 강사가 해고되거나, 처우 개선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교수채용과 임용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개선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시간 강사 또한 교수처럼 보따리 돈이 들어가는 폐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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