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때 읽으려고 했던 황석영이 쓴 ‘강남몽’을 어제서야 읽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최근 강남몽 표절시비 논란이 구입사실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 최근 발간된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의 ‘허수아비춤’도 곁들어 함께 읽었다. 물론 강남몽의 애피타이저로 읽은 것은 아니다. 두 작가는 한국 현대소설무학의 거봉이자 이야기꾼들. 두 소설이 큰 맥락에서 한국 천민자본주의의 역사와 폐해를 다루고 있기 때문.
1. 강남몽
황석영의 ‘강남몽’은 강남불패신화의 굴곡을 다루고 있다. 강남을 이야기 할 때 압구정을 빼 놓을 수 없다. 조선시대 세조 때의 권신 한명회(韓明會)가 지은 압구정이라는 정자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선 강남의 아파트들은 한국 사회의 상징이자 땅과 부의 상징. 시인 유하는 압구정동 체제가 만들어 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라고 노래했다. 대하소설로 다루어도 될 소재를 간결하게 압축 정리해 놓은 강남몽은 픽션이지만 논픽션에 가깝다. 황석영 특유의 입담과 글이 호흡을 빨리 재촉해서 읽게 만들지만, 아쉬운 생각도 많이 들었다. 1992년에 고석만 PD가 연출한 MBC 드라마 ‘땅’이 떠올랐다. 한국 사회에서 땅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다. 땅값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땅 때문에 벼락부자가 생겼고, 강남도 땅 때문에 강남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으니까. 드라마 ‘땅’은 세간의 관심을 이끌어 내었지만, 용두사미가 되었다. 드라마 내용이 아니라, 아쉽게도 더 이어지고 다루어야 할 내용이 끊겼기 때문이다. 강남몽도 조금 길고 무겁게 강남의 꿈과 그 꿈이 만들어 낸 땅과 욕망의 역사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면 어땠을까? 황석영의 강남몽은 신동아 조성식 기자가 쓴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의 일부 내용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황석영은 아직 말이 없다. 누가 꿈을 꾸었는지, 꿈꾸고 있는지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으로는 허구와 비허구의 경계가 불투명해서 표절이라고 못 막아버리기에는 애매한 구석이 많다.
“운동선수마다 약점이 있어요. 나는 여러 가지 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 약점을 다 간파하고 그것을 공략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한마디로 꾀를 부린 거죠. 권투한 친구들과도 많이 붙었는데,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요. 권투하는 놈은 유도로, 유도하는 놈은 씨름으로 무너뜨렸지요. 실전에서 가장 덕본 건 씨름입니다.”(‘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 298쪽)
“그는 여러 가지 운동을 했기 때문에 각 부분의 약점을 잘 알고 있어서 가령 상대방이 권투하는 자세로 나오면 유도식으로, 유도하는 놈은 씨름이나 태권도로 공략했다.”(‘강남몽’ 265쪽)
2. 허수아비춤과 MC몽
조정래가 쓴 ‘허수아비춤’. 허구지만 현실 세계의 부조리한 장면이 그대로 떠오른다. 편법ㆍ불법 상속, 차명계좌, 비자금, 상납 등 압축성장이 빚어낸 한국의 초상이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 현실은 공정사회를 외치지만, 조정래는 불공정한 사회의 자화상들을 풀어 놓았다. 조정래의 역사적 입담과 글담을 누가 따라가겠는가. 허수아비춤은 현실 세계에서 진행되고 상황들이 연상되어서 그런지, 출판계에 허수아비 바람을 타고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것은 일반 대중들의 현실에서 느끼는 관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 일까? 막히고 막혀 참다가 풀어줄 해우소를 찾듯이.
자본과 소유, 분배의 역사. 불공정한 한국 사회 이면을 파헤친 두 소설. 강남몽과 허수아비춤을 읽으면서 MC몽도 떠올랐다. 사실 MC몽의 병역기피 의혹은 빙산의 일각이다. 다만 MC몽을 보면서 실망한 것은 ‘거짓말’ 때문이다. 무언가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병역기피도 아무나 하지 못한다. 강남몽을 만들고 허수아비사회를 만든 병폐의 주체들이 앞장서서 사회의 부조리를 자체 양산시켰다. 돈과 권력은 모든 것을 정당화시켰다. 일반 시민들은 상상하기 힘든 일을 이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해놓고 오리발을 내민다. 남이 하면 죄가 되고 자신이 하면 죄가 없다. MC몽이 국무총리 후보였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압축 성장 깡통에는 너무 많은 비리가 담겨있다. 언제 이 거품이 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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