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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지하철 난투극, 그 씁쓸함에 대하여

by 밥이야기 2010.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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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 대학교에서 ‘온라인 저널’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학생들과 한국 포털사이트 구조와 특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지하철 난투극’ 1,2위를 다투며 뽐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오늘 새벽에도 여전히 ‘지하철 난투극’이 1위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관련 ‘동영상’을 보았다. 할머니와 여학생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10대 여학생은 순식간에 패륜녀(인터넷에 쏟아진 표현)가 되었다. 할머니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나이 값 못했다는 조롱 글도 보인다. 아이나 어른이나 똑같다는 말. 언론과 소셜 네트워크 공간에 많은 글들이 흘러 넘쳐 난다.

 

 새벽 첫 지하철이 바쁜 숨소리를 뿜어대며, 꼬리를 감춘다. 성냥갑 아파트에서 하나, 둘 불이 켜진다. 오늘도 지하철에서 많은 이야기들과 상처들이 돋아나고, 묻힐 것이다. 이틀 전에는 한 여자 분이 지하철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지하철을 ‘지옥철’이라고 한 때 불렀다. 지금도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노선마다 다르겠지만 몇 몇 노선은 출퇴근 시간뿐만 아니라 낮 시간에도 사람들로 가득하다. 무표정한 얼굴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젊은이들은 음악을 듣고, 오락을 한다. 눈을 감고 있는 분들도 많다. 어르신들이 등장해서, 억지 잠을 자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모든 노선들이 그렇지 않지만, 지하철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타고 있다. 고령화 사회. 임산부와 노약자 좌석이 별도로 칸마다 마련되어있지만, 요즘은 모자라 보인다. 어른신들 입장에서는 집에서 고독만 살라먹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지하철의 얼굴들은 서민의 자화상이다. 하루의 희로애락을 담아 달린다. 싸움도 일어나고, 주 예수를 외치고, 눈칫밥으로 물건을 판다. 시끄러운 소리를 애써 무시한다. 하지만 가끔 버럭 조용히 하라고 경고의 목소리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도심을 빠져 나간 막차 시간을 앞둔 늦은 저녁 시간에는 취객들도 눈에 뜨인다. 대놓고 침대삼아 잠자는 사람도 보인다. 가끔 본의 아니게 소매치기의 능숙한 손놀림도 발견하다. 눈을 감는다. 아는 체 하면 손해다. 면도날 나온다. 사람들의 얼굴도 천차만별 가지각색이듯 성격도 마찬가지다.

 

할머니와 여학생의 밀고 댕기는 난투극은 작은 사건이다. 문제는 얼굴 가림 없이 동영상이 공개되었다는 점. 요즘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오락하지 말라고 충고한 어머니를 살해하는 세상 아닌가. 어디 그뿐이랴.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어르신들 또한 여러 가정사로 마음 상태가 정상이 아닌 분들이 많다. 고독하다. 일자리는 없고, 친구 없고 자식 떠나고 돈 없는 나 홀로 노인 분들은 쓸쓸하다. 작은 일에도 감정이 복받쳐 오를 수 있다. 그렇기에 지하철 난투극은 쓸쓸함을 넘어 씁쓸하다.

 

 학생들 또한 마찬가지다. 어른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집중력 결핍에, 공부와 미래에 대한 압박감이 얼마나 심하겠는가. 애써 잊으려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낸다. 이런 모습들, 자세히 보면 들여다 볼 수 있는 사건과 사고가 지하철과 서민들 주변 삶에 펼쳐져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살며, 곁눈질로 세상을 흘낏 보는 장관이, 지하철 몇 번 탄다고 그들의 심정이 보이겠는가.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한다. 지금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예의가 바르고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있어야 한다고 믿지만, 기본이라고 생각하지만. 일상다반사로 들어나고 있는 ‘지하철 난투극’을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와 마을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집값 때문에 철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도시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다. 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해 부부가 하루 웬 종일 삶에 허덕이는데. 그렇기에 ‘지하철 난투극’은 할머니와 여학생, 두 분만의 문제로만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것은, 학생이 잘못했다는 패륜이라는 비판 이전에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떤 세상인가. 실시간으로 누구나 사소한 풍경이나 사건을 사진과 동영상을 담아 인터넷에 공개할 수 있다. 전파력도 엄청나다. 많은 사람들은 혀를 차면서도 구경한다. 관람객이자 비평가다. 자신의 얼굴만 등장하지 않으면 된다.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런데 할머니가 나의 어머니고 딸이라면 어떤 생각을 할까? 박수 칠 것인가? 울어대는 고양이를 창밖으로 던지고, 스트레스로 늘어나는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 아닌가. 새벽 첫 지하철에 이어 두 번째 지하철이 지나간다. 띄엄띄엄 앉은 창백한 유령 같은 사람들이 스쳐 사라진다. 차가운 공기 탓인가. 오늘도 지하철은 안녕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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