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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한 주부의 대형마트 장바구니 엿보기

by 밥이야기 2010.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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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밥이야기






마트 라이프 Mart-Life?


'차’가 있어야 시장 본다?


내가 평소에 언니라고 부르는 김혜정 씨(38세)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맞벌이 직장인이자 한 아이의 엄마다. 얼마 전까지 결혼한지 10년이 넘도록 내 집 한 칸이 없는 게 말이 되냐며 기염을 토하더니 드디어 꿈을 이뤄 올해 6월이면 청약당첨된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이 언니에게 얼마 전 장을 보러 가지고 전화를 했다. 대뜸 돌아오는 말이 이렇다. “남편이랑 시간 맞춰봐야 해.” 결혼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남편 팔짱 끼고 장보러 다니나 궁금했더니 사실 속내는 남편이 아니라 ‘차’가 주인공이었다. 남편이 차를 운전해 줘야 근처 대형마트에 가서 장을 봐오지 혼자는 못 간다는 것이다. 장보기 무대가 재래시장에서 대형마트로 바뀌면서 이제 장보러갈 때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건 차가 됐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래도 시장 근처엔 얼씬도 안 하던 남편들이 슬슬 마누라 장보기에 동원되기 시작했으니 대형마트가 남녀평등 가사분담에 일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나?

 

사실은 공짜가 아니야


막히는 길을 뚫고 도착한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빼들고 본격적인 장보기를 시작하자마자 아이들은 날듯이 시식코너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과일에서 시작해서 삼겹살, 스테이크를 지나 만두, 자장면을 거쳐 아이스크림까지 풀코스 시식을 하고 나서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시식코너를 헤집고 다니는 아이들 보며 민망해 하지 마시길.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공짜에도 사실은 다 제값이 있다. 대형마트에서 시식을 진행할 경우 2배에서 5배까지 매출이 증가한다고 한다. 또 그 자리에서 당장 구매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장을 볼 때 비슷한 제품 중에서 시식 해본 제품을 찾게 되니 장기적인 고객을 확보하는 노림수도 들어 있다. 게다가 장보러 가는 시간이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이니 출출한 배에 입에 들어가는 뭔들 맛있지 않겠는가. 맛을 보니 구매력이 높아지는 건 당연지사. 이날 언니도 시식코너에서 맛을 본 제품 중 세 가지 이상을 카트에 집어넣었다.


복잡한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유제품 코너에 도착해서 500밀리리터 우유를 찾으니 없다. 이리저리 뒤지다 언니가 고른 것은 1천 밀리리터에 덤으로 200밀리리터 두 개가 더 붙어 있는 우유였다. 1원이라도 아끼려는 주부의 습성 상 같은 값이면 더 많은 양을 사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러다보니 필요한 것 보다 세 배나 더 많은 양을 구입하게 되었다. 저걸 유통기간 안에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덤으로 묶어주는 상품 두 개를 고르고 계산대 앞에 놓여 있는 초콜릿을 아이들이 잽싸게 카트에 집어넣으면서 이날 장보기는 끝이 났다.


마트-라이프의 풍경


장보기 끝에 언니에게 슬그머니 왜 동네슈퍼는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대답인 즉 한 두 가지 정도야 동네슈퍼를 이용하지만 채소나 과일이 신선하지 않아 잘 가지 않는단다. 사람들이 동네슈퍼에는 자주 가지 않으니 물건이 오래 진열되어 있어 시들해지고, 물건이 좋지 않으니 사람들이 더 가지 않는 그런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생각해보니 그  동네 아파트 상가 슈퍼도 얼마 전에 문을 닫고 그 자리에 부동산 점포가 들어섰다. 한참이나 걸어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아니, 여기 슈퍼 물건 좀 사주지. 이젠 물 한통 사려고 해도 한참 가야 하잖아.”라며 투덜거렸던 언니가 생각났다. 동네 슈퍼라도 첨가물 들어있는 가공품이며 제철 아닌 과일들로 진열대가 꽉 차 있을 것이다. 그래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소비를 부추기며 움직이는 대형마트보다야 동네 슈퍼가 왠지 더 인간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가까이 걸어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웃들은 점점 멀어지고 자동차와 대형마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우리가 만들어 낸 마트-라이프의 풍경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앗,사버렸다


이것들을 왜 사버렸을까? 무거운 쇼핑봉투를 양손에 들고서는, 한숨섞어 되묻는다. 나름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구매의 합리화>를 시도해 보지만, 답이 안 나오는 것도 많다. 여기저기서 <사버렸다>는 넘치고 있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마케터가 쓴 이 책은, 이른바 <시도 때도 없이 강림하는 지름신의 비밀>을 사소한 것에서 파헤친다. 바로 소비자들이 직접, 구매 이유를 영수증의 여백에 친필로 작성한 <영수증 조사 리포트>. 이것은 다름아닌 <앗>하고 <사버린> 소비자들의 구술 증언인 셈이다.


물론, 여기서 저자가 <영수증 리포트>로 끝난 것은 아니다. 마케터라는 직분에 충실하여, 이를 심도있게 분석하더니만, <여성들의 소비행태 분석>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구매를 충동하여 <사버렸다>를 외칠 수 있게 만드는 <고객행복>의 마케팅 제안을 던진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더 이상 남성의 구매력에  의존하는 상품이 대박을 터뜨리는 시대는 지나갔고, 여성의 본심과 욕망을 자극하는 상품이 잘 팔린다는 것이다. 여성의 충동구매의 비밀은 바로 구매행동에 뒤따르는 <쾌감>이 바로 재구매로 이어지는 핵심열쇠이자, 그 쾌감은 만족감이 아닌 행복감이라는 것. 저자는 참으로 이상한 이론을 근거로, 별 것을 다 마케팅으로 만들어낸다. 


이제 책을 덮었다. 이 순간에도 많은 여성들이, <고객행복>의 마케팅에 헌금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마케팅의 설교에도 아랑곳않는 많은 여성들이, 예술같은 장바구니를 조금씩 채운다. 이들의 지혜로운 구매와 소비의 증언을 담은 영수증 보고서에 더 큰 기대를 해본다. 여기 <앗>하고 <사버린> 여성들의 증언을 들어보자. 과연 그녀는 행복했을까?  앗, 사버렸다 / 마쓰모토 토모코, 넥서스BIZ

 

장바구니 엿보기


장바구니 속 물품들     

  
●1차 농산물: 한우등심(횡성), 우유, 무, 참다래, 새송이버섯, 밀감(제주), 새우(태국), 돼지고기, 애호박, 오이  ●가공식품: 순대(야채 국내산, 당면 중국산), 물만두(미국산 밀가루), 혼합통곡물씨리얼(국내산 잡곡), 초콜릿, 용기면, 갈비양념, 열무김치, 오이김치  ●공산품 : 연필(중국산), 실내화(중국산), 귀마개(브라질산)  ●총 사용비용: 14만3천 200원

 

구매한 1차 농산물과 가공식품 가짓수가 비슷하다. 1차 농산물 중에서도 제철음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밀감 정도. 한겨울에 출하되는 채소들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등 가온재배하기 때문에 가격도 높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으나 이미 사철 싱싱한 채소를 먹는 것이 일상화된지 오래다. 공산품은 대부분이 중국산으로 국내산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기란 불가능한 것일까?

 

장바구니 안 이동거리


미국은 농산물 평균 이동거리가 2천 킬로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그럼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는 다행히 땅이 넓지 않아 아무리 멀리 이동해도 300킬로미터 안팎이다. 채소는 50킬로미터 이내의 것을 구매하는 것이 장거리 이동에 따른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적정거리라 한다. 그러나 가공식품은 적어도 한두 가지 이상씩 수입농산물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1차 농산물을 국내산으로 고른다 하더라도 가공식품을 사면 살수록 장바구니 안 이동거리는 국가를 뛰어넘어 급격하게 늘어날 뿐만 아니라 첨가물 섭취도 늘어난다.

 

장바구니에 담긴 식품첨가물


총 45가지: 용기면(23가지) / 물만두(10가지) / 갈비양념(7가지) / 초콜릿(3가지) / 혼합통곡물씨리얼(2가지)

가공식품은 먹을거리 문제를 무한히 캐낼 수 있는 광맥이다. 이날 장바구니 속에 들어가 있던 식품첨가물 수는 총 45가지였다. 가공식품에는 첨가물뿐만 아니라 GMO로 의심되는 농산물도 모두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 갈비양념에 들어가는 탈지대두는 미국산으로 표기되어 있어 GMO 콩을 원료로 하고 있다는 단서를 던져주지만 올리고당은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올리고당은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않고 100퍼센트 수입 옥수수를 이용해서 만들어 지는 것으로 GMO 농산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이런 정보는 알기 어려우니 GMO 농산물을 피하고 싶어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역시 가공식품을 먹을 때는 두 눈 꼭 감고 그냥 꿀꺽 삼켜야 한다. 알면 못 먹는다.

 

장바구니 안 이동거리 


귀마개(브라질): 18,000km    
물만두,밀가루(미국): 11,000km        
실내화(중국): 5,000km
연필(중국): 5,000km
새우(태국): 3,600km
세척 무(제주): 446km
소고기(횡성): 138km

 


사람들은 결코 물질 자체를 ‘그 사용가치’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준거집단이라고 생각하는 자기 집단에의 소속을 과시하기 위해, 혹은 보다 높은 지위의 집단을 지향하고 현재의 자기 집단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타인과 구별짓는 기호로써 물질 소비를 항상 조작하고 있다.   장 보드디야르의 <소비사회의 신화와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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