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의 앙드레김(김봉남)
앙드레김, 김봉남으로 영면하다
한국 패션디자이너의 대부로 불렸던 앙드레김이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향년 75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먼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국 최초 남성패션디자이너인 앙드레김은 독특한 의상과 말투로 세간의 화제가 불러일으켰지요. 1960년대 한국에서 남자가 패션디자이너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패션디자인이라는 직업 영역도 그 당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했으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고인의 엇갈리는 평가를 떠나, 외길 인생을 걸어간 고인의 열정은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앙드레김을 보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고인의 캐릭터입니다. 언론을 통해 앙드레김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거나, 프랑스 교포 출신인줄 알았습니다. 앙드레김의 이름도 이름이지만, 영어가 섞인 말투 때문이었지요. 프랑스식 영어발음인줄 알았습니다. 세월이 지나 앙드레김 본명이 김봉남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1999년 옷로비 국회진상위원회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본명이 알려짐)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두 번째는 배우 엄앵란씨가 떠오릅니다. 앙드레김은 한 때 국민 여배우로 불렸던 엄앵란씨의 영화의상을 담당하면서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되었지요.
앙드레김은 많은 연예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지요. 한때는 앙드레김이 디자인 한 옷을 입어야지 스타급이라는 말도 떠돌았을 정도니까. 영향력이 컸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마 고인의 장례식장에도 많은 스타급 연예인들이 출동할 것 같습니다. 고인은 패션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자선활동도 열심히 했지요.
이제 앙드레김은 김봉남의 이름으로 떠났습니다. 짙은 화장과 아무도 따라 오지 못할 것 같은 카리스마로 한국 현대 패션계의 마중물이 된 앙드레김. 슬픔도 슬픔이지만, 장례식이 앙드레김을 통해 도움을 받았고, 앙드레김의 패션쇼에 출연했던 사람들, 여러 연유로 앙드레김과 만나서 고인을 추억하는 장례식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쩌면 고인이 바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2008년 고인은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부상 때문에 3위에 그친 김연아선수를 만나기 위해 인천공항을 찾아갑니다. 귀국한 김연아 선수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지요. 아마 기대한 성적이 나오지 않았고 피곤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요즘 세대들은 앙드레김을 잘 모를 수도 있구요. 그당시에는 '앙드레김의 굴욕'이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이 많이 유포되었지요. 하지만 세계대회 1등도 아니고 부상으로 고전분투한 김연아를 격려하기 위해 찾아간 앙드레김의 스포츠에 대한 애정과 부지런함에 점수를 더 주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순백의 디자이너였던 고인, 순백의 세상에서 편히 쉬시길 기원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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