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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2598

시국선언을 넘어,21세기판 만민공동회 개최 - 시국선언을 넘어, 만인의 광장으로 ▲ 20세기판 만민공동회 개최는 가능 할까?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1898년 10월 28일에서 11월 2일까지 6일간 종로에서 열린 만민공동회. 서재필이 중심이 되어 만든 독립협회가 친러정책 반대와 자주외교를 표방하며 시민·단체회원·정부관료 등과 함께 참여한 대규모 군중집회를 통해 고종에게 ‘헌의 6조’를 건의하게 됩니다. 고종은 결국 ‘헌의 6조’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보수세력에 의해 탄압을 받게 되지만.... 헌의 6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일본인에게 의부(依附)하지 말 것. 둘째, 외국과의 이권계약(利權契約)을 대신(大臣)이 단독으로 하지 말 것. 셋째, 재정을 공정히 하고 예산을 공표할 것. 넷째, 중대 범인의 공판과 언론·집회의.. 2009. 6. 3.
故노무현,서거하기 전 6월 항쟁을 떠올렸다! - 2009년 6월 항쟁 기념일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되살아날까! ▲ 6월 항쟁은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이한열의 죽음이 기폭제가 되었다. 6월 항쟁은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가장 컸지만, 광장을 막기 위한 강경진압과 폭력이 결국 87년 민주체제를 열게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사진 출처 : 인터넷 6월항쟁 기념관) 6월 항쟁 기념일이 다가옵니다. 1987년 6월 10일부터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져 온 군부독재의 사슬을 끊어 내기 위해 전국에서 민주대장정이 시작됩니다. 물론 6월 10일부터 광장이 열린 것이 아닙니다. 1987년 1월 발생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큰 배경을 이루어 반민주, 반독재에 저항하는 시위가 끊이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1월부터 항쟁이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2009. 6. 2.
친구와 노무현,두 사람을 수원연화장에서 보내다 *수원시 연화장(사진자료 수원시연화장홈페이지) 재작년 고등학교 때 단짝이었던 친구가 서울 청계산에서 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때도 수원연화장에서 화장을 했습니다. 시신이 병원에서 나올 때보다 수원연화장에 도착하니, 더 큰 슬픔이 엄습해 왔습니다. 친구의 시신이 화장터로 들어가는 것을 보는 순간, 지난 시간 너무 흘린 눈물 때문에, 말라붙은 눈물보가 다시 터졌습니다. 눈물이 흐느낌과 함께 하염없이 쏟아졌습니다. 오늘 오후에 수원연화장에 갈려고 했으나, 몸이 너무 좋지 않아서 텔레비전으로 나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고 있습니다. 친구의 모습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친구는 고등학교 때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교도 가지 못하고 자수성가 한 친구였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으로 당선.. 2009. 5. 29.
한 학생이 조퇴하고,노무현대통령 수원연화장에 간답니다! 오늘 오전 서울시청광장에는 가지 못할 것 같고, 오후에 수원 연화장(집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에는 참석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가는 길을 확인하기위해 다음과 네이버에 “노무현 화장”과 “수원연화장”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했습니다. 검색을 하다보니 이런 저런 기사와 자료를 읽게 되었습니다. 네이버 지식IN에 어제 저녁에 한 학생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선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 내일 노무현대통령 화장하는곳에갈건데 비공개 2009.05.28 21:42 답변 1 | 조회 362.. 2009.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