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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야만의 시대, 한 철거민의 죽음

by 밥이야기 2009.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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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강홍구



한 철거민이 목숨을 끊었다. 서울 마포구 용강동의 시민아파트. 마포구청이 고용한 철거용역 직원과 몸싸움을 벌인 뒤 울분에 못 이겨 자살했다고 한다. 칼바람, 송곳 바람 부는 겨울. 서울 '한강 르네상스'의 현 주소다. 인간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생존권과 주거권이 박탈되고 있는 대한민국. 용산참사가 떠오른다. 일상의 용산참사가 벌어지고 있다. 보도되건 되지 않았건 빈곤 때문에 자살 하는 사람들과 거리에 쫓겨난 사람들이 시나브로 늘어나고 있다.

 

12월을 나눔의 계절이라 부른다. 추운 겨울 호주머니에 손들어가듯, 온기를 담아 다시 내어 주는 주고받음의 계절. 그런데 나눔의 종소리만 요란 할 것 같다. 오늘날 우리의 아버지들은 어떤 모습일까? 경쟁과 해고의 압박 속에 살아가고 있다. 속도지상주의와 신개발은 사람들의 마음을 황량하게 만든다. 번듯해 보이는 고층 아파트와 건물들 이면에는 사회적 약자의 숨소리는 죽어있다.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권력이 만들어 놓은 차양막에 가려있다. 남북분단이 아니라 사회적 분단이다.

 

디자인 서울. 세종시와 4대강 살리기 사업만 존재하는 대한민국. 사소한 일상의 슬픔은 내밀지도 못한다. 국가와 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의 희생을 바랄 뿐이다. 서울이 불러 서울에 왔건만, 다시 변방으로 쫓겨 갈 수밖에 없는 민초들의 삶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다. 비대한 권력은 수도권만 키워낼 생각뿐이다. 왜 그렇겠는가. 자신의 안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땅값이 오르고 땅과 아파트를 팔고, 개발업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대한민국에서 ‘민(民자)’를 빼야 한다. 한국만 있을 뿐이다. 강산은 변했지만 가난한 자는 계속 대물림되는 사회. 그러니 희망이 있겠는가. 희망 또한 가진 자의 것.

 

한 철거민의 자살은 분명 사회적 타살이다. 이런 시국이라면 계속 용삼참사와 같은 일이 재발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강압의 사회, 충성만을 강요하는 신권위사회. 야만의 시대가 다시 열린 것은 모두의 불행이다. 경제가 밥 먹여 준다는 거짓에 똑 속을 것인가? 한 철거민의 죽음 앞에 칼칼한 아침이다. 눈물도 말라버린 겨울이다. 상처의 풍경. 학살의 풍경을 보듬어 낼 사람은 정녕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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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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