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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밥

100분 토론, 왜 100분이었나?

by 밥이야기 2009.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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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 100분 토론 역대 진행자들 정운영, 유시민, 손석희(왼쪽 부터)



100분 토론 역대 진행자들은 왜 100분 토론을 떠났나?

정운영(경제학자) : 출연료 협상 실패, 이후 중앙일보에 칼럼을 쓰기 시작
유시민(정치인) : 정치 때문에
손석희(방송인) : 너무 오래해서? 강압 때문에?




시사토론 방송의 지평을 연 MBC 100분토론. 100분이면 두 시간도 아니고 한 시간보다는 40분이 많고, 두 시간 보다는 20분이 모자란다. 그렇지만 언제나 100분을 지키지 못했다. 열 띤 토론은 사람들의 시선을 오랫동안 고정시켰다.

 

100분 토론은 복잡하고 신경 쓰기 싫은 사회적 의제를 보편화 시킨 공로가 크다. 그뿐이겠는가. 이른바 방송 토론의 맏형으로서 다른 방송의 토론 방송을 이끌어내었다. 100분은 꽉 채움이다. 1% 모자란 99%도 아닌 100%였다. 진행자, 토론자, 방청객(시민논객), 시청자가 함께 만든 프로그램. 시인 고은의 역작 ‘만인보’처럼 100분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손석희는 100분 토론 10년 세월 속에 7년 11개월을 지켰다. 3번의 정권을 지나쳤다. 100분 토론은 세 분의 대통령을 뽑고 보내며 세 명의 진행자들이 10년을 만들어 내었다. 첫 번째 포문을 열었던 이는 정운영 선생. 두 번째 지킴이는 유시민. 두 사람의 개성 넘치는 바통을 이어 받아 100분 토론을 정착시킨 사람은 손석희.

 

세월은 지나 정운영 선생은 유명을 달리했다. 유시민은 계속 도전중이다. 손석희는 교수가 되었다. 100분 토론 손석희 고별방송을 보면서, 이제 시사토론 방송도 시나브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 들고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세상 근심은 무거워지고 있는데, 방송은 가벼워지고 있다. 사람들은 바보상자에 머리를 집어넣고, 찬사에 가까운 방송 미담에 계속 웃음을 보낼 것 같다.

 

세 명의 진행자가 만들어 낸 100분 토론은 봇물 터진 한국 민주화의 꽃 피움과 같이 했다. 꽃은 토론이었다. 토론은 민주주의의 고갱이다. 누구나 100분 토론을 보면 울분을 토했고 분노했고, 희망을 싹 틔웠다.

 

정운영은 독특한 어법으로 시청자를 끌어 잡았고, 유시민은 날카로운 화법과 사투리를 정화시킨 서울화법으로 팬들을 만들었고, 손석희는 객관성을 위장한 주관성으로 100분 토론을 지켰다. 이제 두 명의 대통령은 서거했고 그들과 세월을 같이했던 손석희는 떠났다.

 

100분 토론은 채움이자 비움이다. 100%는 완전함이자 결함이다. 채우면 다시 비우고 채움을 위해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100분 토론이 만들어 낸 신화는 많다. 언제 사회 문제에 대해 이토록 열광했고 실망했던 프로그램이 있었나?

 

비움의 길. 깜깜하다. 다시 채우려 하니 세월이 하수선하다. 다룰 의제(어젠다)는 늘어나고 있지만 채워 줄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과거 권위정부의 시대의 허수아비 같다. 방송이 그렇고 세상 소식이 그렇다. 토론은 죽고 싸움만 살아 있는 시대. 희망을 외치지만 절망이 깊은 사회. 이제 100분 토론은 다시 처음처럼 문을 열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키워내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100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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