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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쌀값대란과 무한도전 ‘벼농사’ 프로젝트

by 밥이야기 2009.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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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락 한 알 속에는 우주가 담겨있습니다, 나락 한 알 속에는 농민들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농민들 가슴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쌀값 하락 때문입니다. 오늘 전국 곳곳에서 농민들이 쌀값폭락에 따른 야적 시위를 벌였습니다. 몇 백 몇 천 쌀 포대를 높이 쌓아, 날로 떨어져 가는 쌀값과 정부의 무관심한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농민들의 고통과 불만은 하늘 높이 치솟고 있지만 쌀은 푸대접입니다. 농민들의 한 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 쌀 지원이 끊김에 따라 지금 나라 곳간에는 쌀이 쌓여 있고, 쌀 농가의 수입은 25%나 줄어 들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자라나는 아이들 급식비는 줄어 들어, 이 땅에 굶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MBC 무한도전에서는 야심만만 1년 동안 틈나는 대로 무한도전 식구들이 쌀농사를 진행했습니다. 논을 빌려 씨를 뿌리고, 수확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수확된 쌀은 좋은 곳에 기부된다고 합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마지막 방송이 전파를 탑니다.  일과 놀이 쌀농사의 소중함을 보여준 무한도전 쌀 특집. 재미를 넘어 나락 한 할 속에 담긴 농사일과 세상살이, 만물에 담긴 뜻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무한도전은 나누는데, 정부는 과연 무엇을 나누고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민생현장, 서민행보 하루만 고개 내밀지 말고 직접 일년간 틈틈히 농사일을 해보십시오. 농민의 마음을 헤아려 보십시오. 국민 건강과 밥상, 더 나아가 자연과 생명을 일구는 농민들 속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오늘 농민들의 이유있어, 뚫린 마음을 보니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밥’보다 부정적인 ‘밥’이 너무 많습니다. 죽은 시의 사회, 죽은 밥의 사회에서 시 한편 같은 밥을 먹고 읽습니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밥 같은 시를 읽으면서 마음은 이미 굽어진 논길을 따라 걷습니다. 쭉쭉 직선으로 뻗은 논길보다 굽어진 논길은 한 폭의 수묵화가 됩니다.

 
인스턴트 말과 밥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GMO(유전자조작작물),광우병쇠고기수입, 지구온난화, 고유가, 식량위기 등 밥상을 송두리째 위협하는 징후들. 밥이 하늘이고 생명이라는 진의가 뼈 깊숙이 파고듭니다. 하루 세끼를 먹으면서 하늘과 땅에 감사하고 농부에게 감사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요? 밥을 때우듯이 먹고서 밥을 이야기할 수 없듯, 땅과 하늘을 잇는 농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콘크리트 바닥에 내려놓고서는 밥을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 밥 먹고자 하는 일인데 밥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밥보다 출세나 명예 아니 솔직히 돈이 더 좋아서 일까요. ‘농자지대본農者之大本’이 아니라 ‘부자지대본富者之大本’이 되어버린 세상. 밥을 돈으로 보는 세상. 돈을 밥으로 보는 세상입니다.

 
농경지는 줄어들고, 땅은 황폐화 되어 가고 지역경제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지고, 소중한 공동체의 삶은 무너지고, 풍요속의 빈곤입니다. 위정자들은 경제와 환경살림을 너무 멀리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농업이 살면 환경이 살고 생명이 살아난다는 절체절명의 진리를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일하고 살자가 아니라 일하고 숙어보자는 속셈입니다. 살림의 정치가 아니라 죽임의 정치입니다. 자동차, 반도체 속도의 경제에 목을 매달고‘경제 살리기’라는 낡은 구호로 관심을 돌리기에만 바쁩니다.

 
지금의 현실은 한국만의 현실이 아닙니다. 세계 산업문명의 전체의 위기이기도합니다. 제대된 밥을 먹기 위해서는 땅이 살아나야 되고 농업이 살아나야 합니다. 쌀을 제외한 식량자급률이 5%를 밑도는 현실에서 ‘경제 성장’이라는 발상은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성장이라는 이름아래 얼마나 많은 가치들이 사라질 것이고, 사라져 왔습니까. 이제부터라도 정부나 정당정치에만 기대어서는 안 됩니다. 시민이 주체가 되어‘밥상에서 세계’를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밥상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세계가 보일 수 있습니다. 건강이 보이고, 땅과 하늘이 보이고, 교육이 보이고, 생명이 보이고, 이웃이 보이고...

 
밥상에서 대화를 회복하고 가족과 이웃을 살리는 밥의 정체와 가치를 제대로 들여 다 보는 마음가짐과 인식의 전환. 이제 마음에 불붙은 촛불은 밥상과 밥상을 연결시켜 생활자치운동으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살림의 섬들이 모여 살림의 대륙을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나만 생각하는 삶, 나만 먹는 밥,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삶을 넘어 서야 하는 것이지요.‘ 나는 너의 밥이 되고, 너는 나의 밥이 되는’서로 배려하고 희생하는 삶, 함께 나누는 삶이 담겨있는 ‘밥’의 참뜻을 알리고 이룰 때입니다.

 


밥이란 제 희생이란 뜻이예요. " 저 놈은 내 밥이다 " 이런 말을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잖아요.
저 인간 내 맘대로 이용해 먹겠다는 소리지만, 사실은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산다는 얘기거든요.
밥이란 게 원래 그런 뜻이에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이지요.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만물이 저마다 누군가의 밥이 되어야 돌아가게 되어 있잖아요. 지금은 우리가
누군가의 밥이 되지는 않고, 저 혼자 일방적으로 먹으려고 하니까 세상이 지옥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밥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해요. 내가 먼저 누군가의 밥이 돼야 한다는 거지요.
농사를 짓는 농부를 우리가 도와서, 농민들에게 우리가 밥이 돼줘야 해요.

그리고 농민은
우리들을 위해서 밥이 되고요. 이런 식으로 순환을 계속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의 밥이고 
아이들은 늙은 부모의 밥이 되어 부모에게 공양을 바치고... 이런 식으로 모든 존재가 모든
존재에 대해서 밥이 되는 것, 해월 선생이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는 아름다운 표현으로
말씀하셨잖아요. 한울님이 먹고 산다고, 존재 하는 것은 모든 게 하울님이라고 하셨잖아요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 '인터뷰 내용 중에서 발췌: 밥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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