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http://www.flickr.com/photos/briangudasphotography/4002928519/
이봉주 선수가 전국체전 마지막 우승 피날레를 울리며 은퇴했다. 국민 ‘봉달이’로 불리는 이봉주. 마지막 마라톤 대회를 완주하는 모습을 보고, 교육방송 지식 e채널에서 꼭지로 다룬 '2등 전문가 이봉주‘가 떠올랐다. 이봉주는 짝발(왼발 248mm/오른발 244mm)의 한계를 딛고 한국 마라톤의 역사를 다시 썼다. 이봉주를 보면 마냥 ’착해 보인다‘.그렇지만 그가 참고 달린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마라톤은 인간한계와의 싸움이다. 그 싸움에서 자신과의 승부에서 이봉주는 1등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봉주는 더 값지다.
" 짝발로 달리는 게 고통스러울 때면 아픔이 사라질 때까지 달렸다(이봉주)"
1996년 애틀랜타 올리픽 '3초 차이로 은메달'
2000년 도쿄마라톤 '8초 차이 은메달'
마라토너로서 환갑을 넘은 나이에 '또 이등이야'를 넘어 1등 보다 값진 길을 걸어왔던 이봉주.
그는 지금까지 지구 몇 바퀴를 뛰었을까?
진정 1등은 꼴찌와 2등이 있어 값지다. 이봉주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봉주의 마라톤 성적을 살펴보니 2등을 9번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봉주가 첫 번째로 참여한 공식 마라톤 대회도 2등이다. 이봉주는 1990년 10월 19일에 열린 제71회 전국체육대회, 마라톤 데뷔에서 2위로 입상했다. 공식 기록은 2시간 19분 15초. 이봉주는 마지막 무대도 전국체전(90회). 20년이 지난 이봉주의 마지막 기록은 2시간 15분 25초. 이봉주는 2등뿐만 아니라 1등도 12번 이상했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성적은 좋지 않았다. 이봉주의 크고 작은 우승의 값진 열매는 보이지 않았다.
이봉주를 볼 때마다 황영조 선수가 연상된다. 황영조는 1992년 바로셀로나올림픽 마라톤 대회에 우승한다. 이봉주는 1996년 제26회 애틀란타올림픽에 출전 은메달을 땄지만, 올림픽 우승은 이루지 못한다. 그렇지만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보다 이봉주의 마라토너 역정을 더 아름답게 간직하고 싶다. 이봉주는 마라토너로서는 고령기인 나이에도 불구하고 1등을 넘어 완주를 위해 뛰었다.
기록을 위해
완주를 위해
1등을 향해 뛰었지만, 1등에 고개 숙이지 않았다. ‘마지막 완주 42.195km’, 인생은 42.195km가 아니다. 더 길고 외롭고 험난하다. 그래서 마라톤을 인생과 견주어 말하기도 한다. 평평한 길을 만나다가, 오르막길, 내리막길, 비슷해 보이지만 별 별 길과 다 만난다.
그런데 현실의 세계에서는 2등과 꼴찌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인생은 그래서 삭막하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1등과 성적을 올리기 위해 몸부림친다. 성적 지상주의의 사회에서 아이들은 성장을 멈춘다. 국가는 성장을 이야기 하지만, 성적에 짓눌린 아이들의 상상력을 고갈된다.
이봉주의 2등 신화는 더 조명 받아야 한다. 이봉주는 마라토너에게 새로운 꿈을 안겨 줄 것이다. 과학적인 마라톤 우승제조기가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 단 1초라도 값진 기록과의 싸움. 아름다운 완주.
“그대 진정 아름다웠다”
“ 다시 박수를 보낸다”
“ 제 2의 마라토너로서 참 스승의 길에서 완주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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