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럽'이 무너졌다. 분열,해체,균열 시대가 열려졌다. 운명일까? '유럽연합(EU) 잔류'를 주장해온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결정으로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브렉시트 찬성 여론에는 기성 정치인에 대한 비판이 짙어졌다. 캐머런 총리 책임론. 결국 영국 캐머런 총리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에서 탈퇴로 결정되자 연 기자회견에서 "영국은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아울러 "10월까지 새로운 총리가 대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캐머런 총리는 "영국인의 결정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캐머런 총리는 "영국이 유럽연합과의 새로운 대화를 준비해야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EU탈퇴, 즉 브렉시트 투표 결과는 여론조사 결과와 정반대였다. 투표 당일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유고브의 조사에선 잔류가 52%, 탈퇴가 48%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세계증시도 안도하며 상승세를 보였지만 투표가 진행될수록 '잔류'의 패색이 짙어졌다. 결국 뒤집을수 없은 정도로 표차이가 벌어졌고 탈퇴는 사실로 굳어졌다. 세계 증시도 폭락하는 등 깊이를 가름하기 어려운 충격에 빠졌다. 경제적 후폭풍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탈퇴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EU 울타리를 넘어서고자하는 욕구가 강했다고 볼수 있다. 이번에 70%가 넘은 사상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했는데, 잔류파보다 탈퇴파가 더 많이 결집한 것으로 분석된다. 애초 투표율이 65% 이상이면 잔류가 우세할 것이란 게 현지 언론의 전망이었다. 더군다나 조 콕스 노동당 의원의 피살사건으로 여론 흐름이 반전되는 듯했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영국인을은 왜 이토록 EU탈퇴를 갈망했을까. 우선 영국은 '유럽 공동체'에 대한 생각이 유럽 다른 국가들과 달랐다. 영국은 미국과 정치.경제적으로 가까운 터라 유럽으로 묶이는 것 자체가 탐탐치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1958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가 창설됐지만 정작 영국은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뒤늦게 입장을 바꿔 가입신청을 했을 때는 프랑스 샤를 드 골 대통령이 거부했다. 드 골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후인 1973년에서야 영국은 ECC에 가입했다. 2년 후 영국은 ECC 탈퇴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투표율를 실시한바 있다. 그때는 잔류로 결정됐지만 두번째 투표에선 탈퇴로 결론이 났다. 사실 영국의 브렉시트 논란은 경제문제와 정치적 문제가 뒤섞여 있다. EU 탈퇴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핵심 이슈 가운데 하나는 저소득 고령층의 반이민 정서다.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유럽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오면서 일자리가 줄고 임금도 하락했다는 불만이다. 해마다 EU에 내는 분담금만 31조원이 넘고 이민자들에게도 복지를 제공하느라 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것도 불만이다. EU내 발언권이 가장 큰 독일이 정책을 주도하고 영국은 끌려다니는 것도 국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일단 EU라는 단일시장을 잃을수 있고 유럽 금융의 중심지로서의 지위도 위태로울수 있다. 파운드 폭락과 함께 런던에 있는 주요 금융회사들이 독일 등 다른 나라로 떠날수 있기때문이다. IMF는 영국이 EU를 떠나면 영국의 국내총생산 GDP가 최악의 경우 4.5%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고, 영국 재무부는 향후 2년간 집 값이 10% 떨지고, 실업자가 52만 명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또 대영제국을 꿈꾸는 탈당파들의 바람과 정반대로 영국연방이 해체돼 영국이 작은 섬나라로 쪼그라들수도 있다. EU 잔류를 원하는 스코틀랜드 집권 여당은 이미 브렉시트 결정때 독립을 재추진 하겠다고 공언했다. 북아일랜드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편으로 불똥이 일본으로 튀면서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정권의 경제정책)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가 유럽연합(EU) 탈퇴로 판가름난 24일 엔화가 급등하고 주가가 급락했다. ‘엔저’를 바탕으로 유지해오던 일본 경제는 더 이상 힘을 내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이날 일본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달러당 99엔대를 기록했다. 달러당 엔화가 100엔선 아래로 내려온 것은 2년 7개월만이다. 일본 주식시장도 영국 국민투표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닛케이지수가 7.9% 폭락했다. 닛케이지수는 전날보다 1286.33 하락한 1만4952.02를 기록했다. 이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큰 하락폭이라고 NHK가 보도했다. 영국의 EU 탈퇴로 엔화가 급등하고 주가가 하락하면서 아베노믹스가 큰 위기를 맞게 됐다. 아베 정권은 그동안 엔저를 통해 대기업의 수출을 늘리는 정책을 펼쳐 주가를 올리고 고용을 늘리는 등 일정한 성과를 올려 왔다. 엔저 정책은 또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크게 늘리면서 내수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달러당 120엔대를 기록하던 엔화 가치가 최근 103엔대까지 치솟은데 이어 이날 99엔대로 진입하면서 일본 경제는 갈 길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엔저’에 의존해 수출을 늘려오던 주요 대기업의 수익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니혼게아자이신문은 달러당 엔화 가치가 105엔 수준으로 치솟는 경우 도요타자동차 등 주요 25개 수출기업의 수익이 지난해에 비해 1조7500억엔(약 20조1904억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당시에는 상정도 하지 않았던 달러당 99엔대가 현실화되면서 수출형 대기업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엔화의 급등으로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감소하고, 주가하락 등에 의한 소비심리위축으로 내수도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브렉시트가 결정되면서 EU 잔류 진영을 이끈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를 향한 책임론이 거세질 전망이다. 잔류 진영에서 책임을 묻는 것은 물론, 국론 분열을 초래한 책임론이 확실시된다. 그는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총리직을 고수하겠다고 공언해왔지만, 그가 꺼내든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자충수로 드러남에 따라 정치적 행운을 이어가던 그는 치명상을 입게 됐다. 캐머런은 2010년 총선에서 보수당을 제1당 자리에 올려놓고 총리에 올랐다. 당시 43세로 1812년 로드 리버풀 총리 이래 최연소 총리였다. 노동당 집권 13년에 마침표를 찍고 보수당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캐머런은 과반 의석 확보를 위해 보수 성향의 자유민주당을 연립정부로 끌어들였다.. 여기서 국민투표 기류는 시작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캐머런은 EU 회의론자로 분류됐다. 여당 내 EU 회의론자들의 EU 탈퇴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원래 영국 정치권에서 EU 논쟁은 전통적으로 보수당 내 논쟁이었다. 그러나 자유민주당은 EU 잔류를 지지하는 정당이었다. 캐머런은 당내 EU 탈퇴파와 이를 반대하는 연정 파트너 자유민주당 사이에 끼여 국정 운영에서 운신의 폭이 좁았다. 유로존 위기를 계기로 반(反) EU를 주창한 영국독립당(UKIP)이 급격히 세력을 불리는 등 영국 사회에서 EU 회의론이 다시 부상하던 무렵이다. 2013년 1월 캐머런은 "2017년까지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EU와 회원국 지위 변화를 위한 협상을 추진하고 2015년 5월 총선에 공약으로 삼겠다고 했다.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 승리로 국민투표는 기정사실화됐다. 지난 2월 EU와 벌인 협상을 마친 캐머런은 6월23일을 투표일로 정했다. 영국이 'EU 내 특별한 지위'를 얻어낸 협상이었다. EU 탈퇴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에 동의해줘 부글거리던 독립 여론을 누그러뜨린 '성공' 경험도 있다. 그러나 캐머런의 예측은 빗나갔다. 투표일이 정해지자 보수당 내 EU 탈퇴파가 예상과 달리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캐머런 내각에서 6명의 '반란' 장관들이 탈퇴 진영에 합류했다. 331명인 보수당 하원의원들이 엇비슷하게 잔류파와 탈퇴파로 갈라졌다. 결정적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캐머런에게 등을 돌리고 탈퇴 진영의 선봉에 섰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정치적 명운을 건 한 판 승부를 가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투표 운동을 시작한 보수당은 그야말로 '내전'을 치렀다. 상대 진영을 향해 비난과 독설들을 주고받았다. 투표 결과 찬성으로 나오면 존슨 전 시장은 유력한 차기 보수당 대표로 올라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투표 운동 기간 탈퇴 진영에서 총리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캐머런 총리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총리의 호소는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각종 여론조사가 공개됐다. 국정 운영을 책임진 총리의 리더십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캐머런 정치적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보수당 탈퇴파가 투표에서 승리하면 그간 쌓일 대로 쌓인 캐머런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표출하는 물리력 행사, 즉 사퇴 압력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언론들은 관측한다. 투표를 앞두고 보수당 의원들 사이에서 패배 시 캐머런 총리가 "30초도 못 버틸 것"이라고 공공연히 나왔다. 더욱이 이번 투표는 세대, 계층, 지역별로 갈라진 영국을 만들었다. EU 잔류와 탈퇴 중 하나를 선택하는 단순한 투표였다. 하지만 41년 만에 벌이는 EU 찬반 선택을 놓고 세대, 계층, 지역별로 입장이 뚜렷이 갈렸다. 이 과정에서 온갖 불만이 표출됐다. 또 찬반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면서 갈등과 대립은 더욱 증폭됐다. 투표 결과는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좌절시킬 것이다. 투표 운동이 통합에 보탬이 됐다는 평가는 거의 없다. 국민들의 70%가 '분열적'이었다고 인식했다.(유고브 6월16~17일 여론조사) 국론을 분열시킨 책임자로서 캐먼이 사임할 수 없다는 여론도 거세다. 투표 운동 과정에서 보수당 탈퇴파는 물론 국민에게서도 총리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탓이다. 각종 여론조사들에 따르면 투표 운동 기간 총리가 한 말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70% 안팎에 달했다. 심지어 투표 결과 EU 잔류로 나오더라도 연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도 3분의 1에 달했다. 하지만 캐머런은 최근 BBC 방송에 출연해 브렉시트 찬성 결과가 나오면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느냐는 질문에 "나는 재협상을 약속했고 이를 해왔으며 국민투표를 약속했고 우리는 하고 있다. 나는 영국 국민의 지시를 받고 이행할 것이라고 말해왔고 그런 측면에서 남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나는 이번 투표를 정치인의 미래나 특정 정치인과 엮지 않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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