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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이봉창의사는 수류탄을 들고 웃을 수 있었을까?

by 밥이야기 2009.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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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배경식 연구원이 쓴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를 다시 읽었다. 출간 당시 인간 이봉창의 숨은 이야기를 사료에 기초해 진솔하게 파헤침으로써, 한국 독립운동 영웅사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내었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특히 이봉창의사가 거사를 앞두고 찍은 두 장의 사진을 놓고 배경식 연구원은 다른 관점을 피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폭압의 역사에서 테러리스트는 열사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등 일본의 강탈에 항거하면 폭탄을 던졌거나, 총을 쏘았던 인물들은 테러리스트였다. 하지만 국가의 독립을 위한 저항과 발언은 테러리스트를 정당화시켰다. 테러리스트를 넘어선 행위. 이들은 독립의 영웅이 되었다. 파쇼집단에 대한 저항한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평화주의자 입장에서 보면 분명 폭력이지만, 폭력이 없었다면 평화 또한 없다는 대의는 모든 것을 정당화시켰다. 폭력은 자유에 대한 저항이었기 때문이다.

히틀러 암살계획을 다룬 영화 ‘작전명 발키리’. 클라우스 폰 슈타펜버그 대령이 발키리 작전을 성공시켰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슈타펜버그는 영웅이 되었을까? 영화 속 장면이지만, 겹겹이 쌓인 히틀러의 보호막을 뚫고, 폭탄을 설치하는 슈타벤버그(톰 크루즈)의 초조한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모던보이 이봉창은 거사를 앞두고 어떤 심정이었을까. 두 장의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찹찹해진다. 인간인 이상 치 떨리는 분노보다, 걱정과 두려움이 크지 않았을까?                        
* 기노시타 쇼조; 이봉창의사의 일본 이름



▲거사를 앞둔  두장의 이봉창 의사 사진(사진출처: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
태극기를 뒤 배경으로, 선서문을 목에 걸고 수류탄을 양 손에 쥐고 활짝 웃는 모습의 사진(왼쪽)은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진 사진이다. 오른쪽 사진은 같은 날 찍은  또 하나의 사진인데 침울해 보인다.

 


  ▲이봉창사진과 선서문(사진출처:백범기념사업회)
  이 두 장의 사진을 합성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위 왼쪽사진이 너무 부자연스럽다는 지적때문에.



▲김구선생과 함께 찍은 윤봉길의사 사진(사진출처: 백범 기념사업회)
무우 짜르듯, 사람 표정 기준을 쉽게 단언할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막중한, 목숨을 건 거사를 앞두고
사진을 찍는다면 비장한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인간 이봉창

이봉창은 모던보이(근대적 물을 먹은)였다고 한다. 그의 부친이 재산을 탕진하자, 이봉창은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삶의 밑바닥 속으로 떨어졌다. 이봉창이 김구에게 달려간 배경은 한국인으로서 받아야만 했던 차별감과 모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살아서 받는 모욕감은 공포를 넘어 그의 두 손에 수류탄을 들게 했다. 1930년대 ‘일본을 향해 쏘다’의 주역이 된 한일애국단원의 인물(이봉창,윤봉길,최흥식,유상근)등의 기록을 담은 도왜실기에는 이봉창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봉창 왈: ˝일본 임금을 찔러 죽이기는 아주 쉬운 일인데 당신네들 독립운동자는 왜 이 일을 못하시오?˝

같이 있던 여러 사람들은 그의 미친 놈 같은 소리를 냉소하면서 비웃음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처럼 쉬운 일이라면 그대는 왜 여태까지 일본 임금을 죽여 버리지 못하였는가?˝ 
 
이봉창
의사는 조금도 이 말을 섭섭하게 여기는 빛 없이 다음 같이 말을 계속하였다.

 이봉차왈: ˝내가 작년에 동경에 있을 때, 하루는 일본 임금이 엽산(葉山)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곧 이것을 구경하러 가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일본 임금이 바로 내 앞으로 지나갑데다. 나는 이 때 가슴이 울렁거리고 전신의 피가 끓어오르는 듯 하여, 내 몸에 무기만 지니고 있다면 이 큰 일을 한 번 해볼 터인데, 하고 생각만 하는 중에 임금은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 버렸고, 참 좋은 기회를 놓쳐 버렸소이다.˝

<출처:도왜실기>

이봉창의 취중본색을 본 김구는 영웅본색을 이야기 한다. 바로 이봉창이 술 취해서 이야기 했던 천황암살. 취중진담이 되는 순간이었다.

 
슬픈 역사의 컨덴츠

오늘은 광복절이다. 일본의 패전으로 미국, 중국, 소련이 합작해서 만든 절반의 광복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목숨을 던져 일제강점기에 저항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있었기에 나머지 절반을 채울 수 있었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고, 윤봉길은 일본 상하이 파견 대장을 죽였다. 이봉창은 천황을 암살하지 못했다. 성공과 실패. 이봉창은 실패했지만, 일본의 심장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사진 속의 웃는 모습보다, 침울해 보이는 사진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이봉창은 거사에 실패하고, 옥중에서 조사를 받을 때 "글쎄 나는 너희들의 임금을 상대로 하는 사람인데, 너희들 쥐새끼 같은 놈들이 왜 나에게 무례한 짓을 하는 거냐!" 라고 의연함을 과시했다고 한다.죽음 앞에 이르렀기 때문에 더 당당해진 것일까.

 거사를 앞두고 찍은 두 장의 이봉창사진. 사진을 합성했느냐 안했느냐의 진실을 떠나, 의연한 영웅 상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자화상이다. 영웅을 만들어야 했던 시대, 그렇지만 영웅 없는 영웅시대에 진정한 영웅은 누구였는지 돌아다 볼 필요가 있다. 이름 없이 독립을 위해 숨져간 수많은 민초들이 있지 않는가. 역사는 대표선수만을 기록한다. 독립을 위해 싸운 민중들의 역사는 언제나 풀잎 같은 존재들이다. 광복절이 다가오면 국가독립유공자들을 조명하고 있다. 수류탄을 들고 서 있는 이봉창의 사진을 보면서, 고난을 뚫고 자신을 희생하며 테러리스트가 되었던 조연들이 스쳐 지나간다.

또 한편으로는 ‘슬픈 역사’의 컨덴츠가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를 놓고 보더라도 외국의 경우 시시 컬컬한 소재를 가지고 민족독립사나 인물들을 잘 조명해서, 그 나라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서세원 씨가 만든 도마 안중근은 실패(일반적 잣대;평가와 흥행)했지만, 절반의 실패일 뿐이다. 시도 자체만으로 평가 받을 수 있다. 이런 모색과 실험을 발판으로 한국 수난사에 이름을 장식했던 사람들을 조명하는 영화들이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 기념관도 좋지만, 세계인들이 우러러 볼 인물들과 컨덴츠들이 발굴되어 소개된다면 좋지 않을까. 오늘은 광복절이다. 끝으로 김구선생이 해방이 된지 3년이 안된 1948년, 안두희에게 암살되기 전에 남긴 말을 떠올려 본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