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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조선일보가 명진 스님을 찾아간 까닭은?

by 밥이야기 2011.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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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서남북도 있는데 왜 동쪽을 찾아갔을까? 달마는 불교용어로 자연계의 법칙과 인간의 질서를 일컫는 말이다. 세속의 '법'인셈이다. 달마는 중국 선종을 창시한 인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당시 불교 교리와 정반대 입장에서 좌선을 통하여 사상을 실천하고자 했던 인물. 최근 한겨레신문이 조갑제를 찾았듯, 조선일보가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명진 스님을 찾았다. 글을 쓴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는 '지피지기', 라는 표현을 썼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문제는 적을 알고 나를 모르기에 실패한다.



조선일보는 왜 명진 스님을 찾아갔을까? 명진 스님은 본인 의사에 관계없이,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명진 스님의 거침없는 말의 하이킥에 환호를 보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조갑제를 향해 말의 짱돌을 던지는 사람이 있는 것 처럼 극단적이다. 언론은 객관적일까? 객관적일 수 없다. 한겨레를 읽든 조선일보를 읽든 결국 해석에 따라 주관적 판단을 한다. 다만 문제는 현실의 왜곡이다. 언론은 누구의 편에 서야 할까? 진보를 대변하는 신문이 있는가 하면, 보수를 대변하는 신문이 있다. 이렇듯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균형의 힘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언론은 생존의 법칙에 따라, 살아남기위해 기업의 윤리를 따른다. 기업의 윤리는 이익 창출을 위해,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킨다. 더불어 함께 살자고 말하면서, 노동자를 거리로 쫓아낸다. 언론이 산업화되면서 이익을 추구하다보니 권력에 기생할 수 밖에 없다. 눈치를 본다. 균형의 추는 무너진다. 참 어려운 문제다. 또 하나는 언론의 힘을 빌려, 권력의 주체가 된다는 점. 일부 언론의 사장을 밤의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언론에 찍히면 힘 없는 사람은 순식간에 바보된다. 진실 여부를 떠나, 사법부의 판단을 이끌어 내기까지 힘든 여정이다. 언론은 잘 알고 있다.


이한우 기자는 명진 스님에게 물었다. " 불교계의 강남좌파, 불교계의 노무현 등의 소리를 들었던 거이 봉은사 주지 시절인데... "  " 난 좌파적 우익이지 정통좌파는 아니다. 굳이 말하면 스님파다. 대한민국 주류 사회의 중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 나는 그것을 외면할 수 없다, 그 때문에 나를 좌파라고 손가락질 한다면 감수하겠다.(명진 스님)" 명진 스님은 왜 이명박 대통령을 그렇게 못 마땅하게 여기냐는 기자의 질문에 불교계 입장에서 보면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라고 쓴소리를 다시 보탰다. 진정성이 없다는 뜻. 그래도 박근혜 의원은 진정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의원의 진정성이라? 잘 모르겠다. 침묵하고 외면하고 상황논리에 따라 말을 하는 박근혜 의원이 진정성이 정녕 진정성인지는 더 지켜보자. 조선일보가 명진 스님을 찾은 이유는 균형이 아니라 상황논리다. 명진 스님 입장에서는 조선일보든 한겨레든 관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 사회가 좌,우의 이념적 정립은 필요하데, 대립적 좌우로 갈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해묵은 좌파몰이식 발상을 멈출때다. 좌우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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