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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학파라치를 보니,자살한 외삼촌이 떠오른다

by 밥이야기 2009.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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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의,창조 교육이 사라진, 공교육이 무너진 현실에서 학파라치는 고육지책에 불과하다.


◀사진자료/2005년 mbc에서 상영된 제5공화국 이미지



제5공화국 과외폐지

80년대 정권을 강탈한 전두환은 과외를 폐지시켰다. 그 때 외삼촌은 목숨을 끊었다. 외삼촌은 어렸을 때 앓은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없었다. 외삼촌은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비상해 천재 소리를 들었다. 모 대학에 수석합격을 했지만 끝내 입학을 하지 못했다. 신체적 결함만 없었다면 개천에 용이 될 수 도 있었다. 대학을 입학하지 못한 외삼촌. 가족 살림살이가 어려워서 결국 선택한 것이 과외선생이었다. 3중고(신체, 가난, 학력)에 시달렸던 외삼촌.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자취를 하고 있었던 나는 늦은 밤 연락을 받았다. 자동차 사고로 외삼촌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 병원에 도착해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건널목도 없는 큰 길 한가운데를 걷다가 차에 치였다고. 분명 자살이었다.

과외 폐지소식을 듣고 삼촌은 끊었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생활고 때문에 불법으로 과외를 하기는 했지만, 학생들이 떨어져 나가 예전 같지 않은 수입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다고 한다. 외삼촌은 뇌사상태였다,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왜 외삼촌은 자살을 선택했을까.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신체적 한계와 사회의 냉시, 가난. 유일한 생계수단이며 낙이었던 과외. 과외비도 다른 선생(그 당시에는 학교 선생들도 과외를 했다)에 비해 현적하게 적었지만, 과외를 넘어 사람과의 관계(학생을 가르치는 일)가 있었던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과외폐지와 일방적 단손은 삼촌의 작은 희망을 짓밟아 버렸다.

 

학파라치 공화국

이명박 정부의 “학파라치” 제도를 보면서, 기억 저편에 머물러 있던 외삼촌이 떠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사교육 해결을 위해 전두환 정권의 낡은 유물인 과외폐지를 흉내 낸 학파라치. 백년지대계인 교육을 입안하는 사람들의 머리수준이 이 정도니 미래가 암담하다.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에, 기껏 고안해 낸 것이 학파라치다. 전형적인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땜방용 처방이다. 국민을 사교육 감시견으로 만들겠다는 것 이외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사교육의 문제는 빈부의 격차와 닿아있다. 사교육을 단속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경쟁과 속도를 중요시하는 교육체제와 방침 속에서는 편법과 부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가정형편이 좋은 자녀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교육의 혜택을 누릴 거다. 초등학교부 때부터 시험에 의해 저능아로 나뉘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인가. 저능아 권력이 저능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지금의 사회환경, 교육 구조 속에서는 개천에서 용은 나오지 않는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교육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능력보다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 재능보다는 암기식 교육에 점수를 주는 사회가 계속된다면 용들은 개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공교육이 죽어있는데 사교육 꼬리만 잡으려는 이명박 정부. 이명박 대통령은 개천에서 용 나온 케이스인데, 개천을 잊고 있다. 지금의 환경과 다들 어려웠을 때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 분명 학파라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제도다. 통합의 시대와 반대로 분열을 가속시키고 있는 정부정책을 보면서 너무 불안하다. 이편과 저 편을 나누고 고발하고, 오로지 성장을 위한 성장 쇼를 하는 시대, 아이들 보기가 참 부끄럽다.

 
전두환시대. 과외폐지 때문에 죽은 외삼촌. 배경과 시대는 다르지만 학파라치 때문에 빚어질 풍경들이 섬뜩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은 교육의 사회. 경쟁의 계곡에서 밀려 떨어질 사람들,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