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밥

소설가 김영하, 최고은 죽음 굶주림 때문만은 아니다

by 밥이야기 2011. 2. 15.
728x90

소설가 김영하가 고 최고은의 죽음에 대해 자신의 블로그에 단상을 남겼다. 절필이 아니라 당분간 블로그와 트위터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하는 한때 한국종합예술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최고은도 제자 중에 한 사람. 그렇기에 최고은의 죽음이 그 누구보다 가슴 아팠을 것 같다. 김영하는 최고은이  굶주림으로 인한 죽음으로 몰고 가는 여론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고인이 남긴 쪽지를 확대해석, 박고은이 앓고 있었던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보지 못했다는 것. 

 

 

                  ▲  김영하 블로그 관련 내용 캡처



김영하의 지적처럼 사람들은 편한대로 믿고 떠든다. 최고은을 잘 알지 못하기에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정황을 살펴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적으로 최고은이 굶어죽었다고 사람들은 말하지 않았다. 고인이 겪어야 했던 지난 속내를 들춰 미루어 짐작했을 뿐이다.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을 통해, 작가가 죽음에 이르게 된 배경을 살펴 보았다. 왜 최고은은 죽움에 이르게 되었을까? 작가의 죽음을 대중에게 처음 알린 한겨레신문을 읽어보면, 김영하가 말한대로 마치 고인을 굶주림으로 죽은 것처럼 비쳐 보일 수도 있었다. 다분히 선정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기사를 자세 읽어보면, 경찰은 고인의 지병과 상황, 남긴 쪽지를 미루어 굶주림이 죽음에 이른게 된 복합적 산물일 수도 있었다고 추측했다. 다만 최고은이 남긴 쪽지가 너무 가슴 아픈 사연있어기에 사인이 확대 되었을 뿐이다.


최고은은 병마와 싸웠다. 우을증도 있었을 것이다. 배고픔은 그 산물이다. 방 안을 나서기에도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씩 겪어볼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방문을 열고 고인이 할 수 있었던 일은 이웃에게 쪽지를 남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사람들은 그 최선이 아쉬웠다. 쪽지에 남긴 글을 보고 슬퍼했다. 그것 뿐이다. 그녀가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은 굶주림 때문만은 아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최고은 죽음으로 영화계와 문화예술계의 척박한 현실을 살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고은의 죽음은 금방 잊혀진다. 변화를 촉구하고 요즘의 밥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김영하가 죽은 고은이에게 죽음을 용서하고 싶었듯이, 부모와 가족 친구입장에서 누군들 마음이 가벼우랴. 함부러 이야기 한 사람들은 최고은의 죽음을 굶주림으로 빚대어 이야기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런 상황을 연출하게 한 현실의 무대다. 김영하가 아니라 부모 입장에서 얼마나 억장 무너지는 소식이었을까. 만약 최고은 입장이었다면, 미소지으며 방안을 툴툴 털어내고 나올 수 있었을까. 최고은 죽음은 복합적 산물이다. 개인사와 개인이 방문을 열지 못하고 이불 속에서 의도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 하게 한 상황. 사람마다 다 다르다. 어떤 이는 일주일 굶어도 죽을 수 있고, 어떤 이는 삼일을 굶어도 죽을 수 있다. 어떤이는 희망으로 한 달을 버틸 수 있다. 최고은은 굶주림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육체의 질병, 마음의 질병, 사회의 질병이 엮어 만들어낸 개인의 죽음이다. 최고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면서 최소한 젊은 작가가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는 돌봄의 사회였다면... 그것 뿐이다. 슬퍼한들, 변화한들 그 어떤 글과 발언도 최고은의 죽음을 대변할 수 없다. 박영하가 말한 정신적 고통. 이해한다. 하지만 정신적 고통을 너머 창작하는 사람이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그 안전망을 만들어 놓는 것도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