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5일) 법원(서울중앙지법)은 국가가 박원순 변호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사필귀정. 2009년 6월 박원순 변호사는 위클리 경향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국정원이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을 하고 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국정원은 국가의 이름으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지요.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국가는 국민들로부터 광범위한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대상”이라며 “명예훼손의 피해자로 쉽게 인정할 경우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언로가 봉쇄될 위험이 있다. 잘못된 보도가 있을 경우 스스로 진실을 밝히거나 문화체육관광부의 국정홍보 등을 통해 알릴 수 있고 민사상 반론·정정보도 청구 등으로 이를 바로 잡을 수단을 이미 충분 갖고 있는데 명예훼손 소송으로 해결할 경우 소송이 남발될 위험이 있다”라며 기각 사유를 밝혔습니다.
지금 박원순 변호사는 싱가포르에 있다고 합니다. 어제 밤 이 번 소송을 담당한 차병직 변호사와 박원순 변호사가 주고 받은 이메일 편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박 변호사님께,
그들이 소장을 제출하였을 때는 미국에 계시더니, 선고하는 날엔 싱가폴에 가 계시군요. 마치 패소가 두려워 피하시듯이 말입니다. 현대국가, 그것도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정치는 종교보다 더 치열한 느낌을 줄 때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헌신한 사람에게 국가가 나서서 훈장 대신 민주적 방식을 가장하여 가하니 말입니다.
저희들의 귀감이신 박원순의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은 자신의 일처럼 진지하고 열심히 소송을 진행하였습니다. 만약 오늘 선고 결과가 우리의 예상과 어긋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두 윤지영, 박주민 두 변호사의 공로로 돌려야 옳습니다. 두 사람이 직접 운동장에서 뛴 프로 선수라면, 저는 벤치에 앉아 무조건 이기라는 작전 지시를 하며 구경만 한 감독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예상이란 단순한 승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결과를 의미할 뿐입니다. 그런 뜻에서라면, 두 변호사 다음으로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은 이 사건 재판부의 재판장입니다. 그는 국정원의 사실상 압력 행사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않고 원칙대로 재판을 진행하였습니다. 아마 소심하고 눈치를 살피는 재판장이었다면 선고는커녕 아직 변론을 종결하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결과를 확인한 뒤 시간이 나시면, 즉시 두 변호사에게 연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귀국하시면 뵙겠습니다.
차 변호사님께,
내가 변호사를 하던 시절, 중요한 사건의 선고가 있을 때는 차마 사무실에서 직접 그 선고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방에서 딴짓 하며 기다리기가 일쑤였습니다. 보통 선고시간인 오전 10시로부터 30분을 기다려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으면 패소한 것이어서 풀이 죽어 사무실을 기어들어가곤 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군요. 그것도 남의 사건이 아니라 제 사건의 선고날입니다. 태어나서 변호사인 내가 피고가 되어, 그것도 나라로부터 소송을 당해 이렇게 선고를 초조하게 기다려야 한다니, 참 슬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합니다.
이곳 싱가포르에 회의가 있어 나오면서 사실 의식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래도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나도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나는 오늘 여기 시간으로 아침 6시가 넘어 일어났는데 차변호사님은 새벽 5시에 이 메일을 쓰셨으니 당사자인 내 보다 더 이 사건에 신경을 쓰고 계심이 틀림이 없으십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차변호사님, 그리고 윤변호사님, 박변호사님! 어차피 사건의 결과야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지난 5공이나 6공에서 얼마나 많은 시국사건을 담당해서 변론했습니까! 어차피 유죄는 나게 되어 있었고, 그 사건의 진실과 의미는 결국 역사 속으로 넘겨져 우리는 역사속에서 이길 것을 꿈꾸지 않았습니까? 그나마 차변호사님이 재판부를 칭찬하셨으니 우리가 그렇게 용기있는 재판부를 가지게 된 것도 역사의 진전이라고 위안으로 삼아야지요
아직도 국정원은 옛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재판부에 그런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데 재판부는 최소한 절차적으로는 그것을 거부했으니까요. 만약 재판부가 패소판결을 했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런 용기를 보인 재판부를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예전에 전두환정권 시절에 보도지침 사건이라는 것이 있었지요. 그때 그 사건을 담당했던 박태범 서울형사지법 부장판사님은 잠깐 휴정을 하면서 교도관에게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저 피고인들이 말씀을 많이 하느라고 목이 마를 것이니 물을 좀 갖다 드리라"구요.
우리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그렇게 깍듯이 대하고 배려하는 것을 처음 보았으니까요. 결과는 일부 유죄가 났지만 변호인단의 한 사람이었던 저는 박태범 부장판사님이 보인 태도를 늘 존경의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승소든 패소든 그것은 모두 저의 운명입니다. 어찌하겠습니까? 분단과 권위주의로 고통받는 나라, 야만과 무지로 얼룩진 땅, 정치적 후진이 지배하는 나라. 그곳에서 제가 태어났고, 제가 살아가고, 그 모든 것을 부여안고 함께 좀 더 좋은 세상으로 바꾸어내야 할 그런 곳이 아닙니까. 시대의 고난을 함께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저의 운명이라고 느낍니다.
차변호사님, 윤변호사님, 박변호사님 선임료는 커녕 제대로 시간내서 차 한잔도 못한 엉터리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보내주신 준비서면을 읽을 때마다 그 지식과 지혜, 열정에 늘 감탄해 왔습니다. 귀국하면 인사동에서 맛있는 밥이라도 제가 한번 사겠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박원순 변호사
*출처:박원순 변호사 블로그
박원순 변호사는 국정원이 국가의 이름으로 소송을 소했을때, "권력은 짧고 진실은 길다"라고 말했지요. 진실은 결국 밝혀지고 이기게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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