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65주년 광복절 축사를 통해 언급한 3단계 통일론과 통일세를 생각하면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후 ‘DJ’, ‘고인’ 표기)의 ‘3단계 통일론’을 떠올렸다. 통일세를 이야기 하기 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평화(북한 비핵화 전제), 경제, 민족 통일이라는 3단계 통일론과 DJ의 3단계 통일론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DJ는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경직되어 가는 남북관계를 보고 이명박 대통령의 통일철학 부재를 지적했다. DJ의 3단계 통일론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수정되고 보완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DJ는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진 이후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1993년 7월 14일 한국으로 귀국하며서 기자들에게 말했다. “ 남과 북이 만나야 합니다. 북의 풍부하고도 값싼 노동력과 우리의 투자가 합쳐지면 양쪽 모두에게 득입니다. 통일 독일에서 서독에 짐만 된 독일의 경우와 다릅니다.”
이후 DJ는 아태평화재단을 출범시키고 3단계 통일론을 완성시킨다. DJ의 통일론은 수구우익보수세력에게 빨갱이 통일론으로 불렸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고인은 북한을 공산주의 국가 중에 서도 가장 지독한 독재를 한 국가라고 평가했었다. 하지만 고인은 감옥에 있을 때 김일성과 장기를 두는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당신네도 살고 우리도 사는 길이 뭔가 터놓고 얘기해 봅시다” DJ는 노태우 정권 때 7·7선언과 남북 기본 합의서를 이끌어 냈던 임동원씨를 삼고초려 끝에 아태평화재단의 사무총장으로 기용하게 된다. 두 사람은 통일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렇듯 통일문제는 어느 한쪽의 편협한 시각으로 풀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과연 어떤가. 민주, 참여 정부 사람들 중에서 통일문제 전문가들을 발탁하거나 자문을 구했는가? 단절의 역사를 열었을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과 ‘통일세’는 본말이 전도된 광고카피에 가깝다. 진정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DJ의 3단계 통일론의 요체는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이다. 남북관계를 풀지 않고,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는 것은 현실을 등지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KBS가 공정방송으로 자리매김 하지도 않으면서, 국민의 방송이 되기 위해 수신료를 올려 받겠다는 것과 남북관계를 풀 혜안도 없으면서, 통일세를 받겠다는 것과 차이가 없다고...
DJ는 말했을 것 같다. “우선 만나서 대화하라. 북한이 거부하더라도 만나서 풀어라. 천안함 미스터리 사태를 꽁꽁 간직하고 있으면 절대 풀지 못한다. 통일세는 평화 단계가 온 다음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지금 상황에서 누가 통일세에 찬성하겠는가.”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당시 이부영 민주당 의원이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에서 “ 혹 정부가 조문 의사를 표명할 용의는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극 우 인사들이 반발하면서 이른바 조문파동 사태가 일어났다. 이때 고인은 말했다. “ 과거 냉전시대와 같이 남과 북으로 갈라놓고 내 편과 적이 있는 시대는 분명히 지나고 있었다. 미국의 주장을 무조건 따르는 시대도 지나갔다.”
이명박 정부는 아직 신냉전의 시각에서 벗어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통일세’를 내라고 한다면 이 얼마나 비약이며 모순인가. 8월 18일은 고인 추모 1주기다. 고인이 살아있었다면, 통일의 지평을 열 수 있는 연구를 더 하고 발언했다면.... 아쉬움이 남는다.
* 참고 및 부분 인용 발췌 : 김대중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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