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싱가포르 리콴유 전 수상이 아시아에는 민주주의적 철학과 전통이 없다면 이를 아시아 국가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고 말하자,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계적 권위의 국제정치 학술지 ‘포린 어페스’에 ‘문화가 운명인가?’라는 글을 통해 반박한다. 논문 중에서 김대중 자서전에 부분 발췌된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록크가 근대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웠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록크의 이론에 의하면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들과의 계약에 의거하여 지도자들이 통치권의 위임을 받는데, 통치를 잘하지 못했을 경우 이 통치권이 철회될 수 있다.
그러나 록크의 이론보다 거의 2천년 앞서 중국의 철학자 맹자는 그와 비슷한 사상을 설파한 바 있다. 맹자가 주장하는 왕도정치의 이론에 의하면 왕은 하늘의 아들로서 좋은 정치를 베풀어야한다는 임무를 하늘로부터 위임받았다. 왕이 악정을 하면 국민은 하늘의 이름으로 봉기하여 왕을 권좌에서 몰아낼 권리가 있다고 하였다. 맹자는 심지어 옳지 않은 왕을 죽이는 것까지도 인정하였다. 폭군을 죽이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를 물었을 때 맹자는 왕이 하늘로부터 위임받은 통치권을 잃게 되면 백성의 충성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으며, 백성이 첫째이고 국가(사직)가 둘째이고, 그다음이 왕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민본정치 철학에 의하면 "민심이 천심이다"고 했으며 "백성을 하늘로 여겨라"고 가르치고 있다. 한국의 토착신앙인 동학은 그보다 더 나아가 "인간이 곧 하늘이다"고 했으며, "사람을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같은 동학정신은 1894년에 봉건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착취에 대항하여 거의 50만이나 되는 농민들이 봉기를 하도록 하는 동기를 제공해 주었다. 이 같이 유교와 동학의 가르침보다 민주주의에 더욱 더 근본적인 사상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시아에도 서구에 못지않게 심오한 민주주의의 철학적 전통이 있음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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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어제(16일) 신임 장·차관급 내정자 29명과 오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나는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일 열심히 하면 실세다” “여러분도 일 잘해서 실세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의 중심에 나라를 두어달라” “여기 차관으로 오기까지 각자 무엇을 해서 왔든, 이제부터는 나라가 중심”라고 말했다.
언론에서 회자되고 있는 ‘왕차관’과 관련 임명된 차관 중에 ‘왕’씨는 없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일 중심’ 인사론을 간접적으로 말한 것이다. 왕차관은 다름 아닌 국무차장에서 지식경제부 제 2차관으로 임명된 박영준 차관을 일컫는다.
왜 이런 발언이 나왔을까? 8.8 내각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위장 전입 등 후보자들의 자질이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국민들은 매번 장차관 임명자들의 부도덕성을 지켜보고 있다. 한, 두 번이 아니다. 왜 반복되는 걸까?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만 잘하면 실세다’ 발언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절차를 어기고 일의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뜻인가? 법을 어겨도 일만 잘하면 된다는 뜻인가? ‘모든 것을 중심에 나라를 두어 달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모든 것의 중심에 국민을 두어 달라‘는 표현이 맞다. 나라를 중심에 두고, 국민 여론의 무시하면서 펼치는 정사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나라의 통치권자는 이명박 정부다. 이명박 정부를 위해서 일해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가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그 길은 나라를 위한 길이나 마찬가지이니.
DJ의 논문은 기술된 민주주의 사상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되새겨 읽어 볼 필요가 있다. 맹자는 백성이 첫째이고 국가(사직)가 둘째이고, 그다음이 왕이라고 말했다. 왕이 악정을 하면 국민은 하늘의 이름으로 봉기하여 왕을 권좌에서 몰아낼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민심이 천심이다. 백성을 하늘로 여겨라. 첫째가 백성이고 둘째가 나라고 세째가 대통령이다는 것을. 잘못된 나라, 통치자를 위해 아부하고 실언하고 막말을 일삼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를 위해 일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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