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국선언을 보면서,故박종철 편지를 읽다
6월 10일 이 다가옵니다. 6월 항쟁 기념일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다시 살아나야 할까요.
새벽에 6월 항쟁 기념관 사이트에 들어가 이런 저런 자료(그 당시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문)를 살펴 보다가
6월 항쟁의 기폭제(6월 항쟁 1기를 연~)가 되었던 박종철과 만났습니다.
박종철이 살아있을 때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고향이 같고 연배가 저와 비슷합니다. 내가 1년 선배 되는군요.
그래서 그런지 6월 햇살아래 설 때면 박종철이가 가끔 떠오릅니다.
(고향과 나이를 들먹여서 죄송합니다/이런 발언도 학력,지연을 강조하는 권위의 유산이지요)
공안당국에 붙잡혀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6월이며 생각나는 사람을 들라면
박종철과 이한열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름 없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숨져가거나 고통 받은 사람들은 너무 많습니다. 이들이야 말로 묵묵히 6월항쟁을 이끈 주역들이라고 생각합니다.
1987년 6월 부산을 이끌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이 땅에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지금, 6월 항쟁과 그 때의 사람들, 함성이 가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박종철이 감옥에 있을 때 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보았습니다.
편지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저들을 미워합시다. 그리고 저들이 저들 편한대로만 만들어 놓은 이 땅의 부당한 사회구조를 미워합시다.
악한 것을 악하다고 말할 용기가 없다면 마음속으로 진실하게 믿는 용기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과연 어떤 끝을 보고 싶어 하는 걸까요.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한 이명박 정부는 과연 다가오는 6월 10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 합니다. 정말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노무현이 아니라 노무현이 그토록 사랑하고자 했던 이 땅의 서민들의 삶을 위해,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못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편지 전문>
아버지, 어머니.
더운 날씨에 고생들 많으시지요. 저는 여전히 건강하게 잘 지냅니다.
장마철인데도 비는 오지 않고 높은 하늘을 틀린 일기예보를 조롱이나 하는 듯이 연일 쨍쨍 내리쬐는군요. 꽤 더운 편이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합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비취 파라솔 밑에서 선글라스 끼고 한가하게 피서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잘 먹고 잘 놀아서 피둥피둥 찐 살을 빼느라고 사우나탕, 헬스클럽 다니면서 땀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삼복더위에 라면으로 끼니 때우며 먼지와 기름 냄새로 가득찬 무더운 작업장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노동자들에 비하면 저는 신선놀음입니다.
가족들의 그런 태도는 여기 갇혀 있는 저에게는 진정으로 위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딴 가족들은 면회오면 어떻게든 꿋꿋하게 지낼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고 바깥 소식들을 전해주고들 하는데 허구헌날 와서는 판사님 앞에 고개 숙여라, 판사가 무슨 내 할아버지라도 됩니까.
저들이 비록 나의 신체는 구속을 시켰지만 나의 사상과 신념은 결코 구속시키지 못합니다. 저를 포함한 수많은 노동자, 학생들이 구속되어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입니까. 누가 우리를 구속시켰습니까. 저들을 미워합시다. 그리고 저들이 저들 편한대로만 만들어 놓은 이 땅의 부당한 사회구조를 미워합시다. 악한 것을 악하다고 말할 용기가 없다면 마음 속으로 진실하게 믿는 용기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구속되어 있는 사실은 왜 쉬쉬합니까. 한 명에게라도 더 이러한 부당한 현실을 알리십시오. 내가 왜 구속되었는가를, 저들의 폭력성을, 우리들의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고발하십시오. 그럴 용기가 없으면 마음 속으로나마 바깥에서 오늘도 열심히 싸우고 있는 우리 친구들과 저처럼 싸우다 갇혀 있는 친구, 선배들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라도 쳐 주십시오. 엄마 아버지의 막내는 결코 나약한 인간이 아닙니다.
이만 줄입니다.
칠월 팔일
막 내
우리들은 미워할 사람은 미워해야 합니다.
통합은 말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현실을 미워하고 삶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 뜨리는 제도와 권력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착각에 빠진 정부를 일깨워 줄 수가 없습니다.
대학교수들이 왜 시국선언을 하고
거리로 나서야 하는지 그들은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현 시국을 돌파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누구를 미워하고, 거리에 나서고 싶겠습니까. 다들 사느라고 힘들어 죽겠는데...
제발 착각하지 마십시오.
죽음의 굿판을 벌이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같이 살아보고자, 이 땅에 힘없는 자들이 조금이라도 인정 받고 사는 세상을 열고 싶어서입니다.
▲오열하고 계시는 고 박종철열사의 어머님
* 사진출처 : 6월항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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