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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13

6월10일,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을 미워해야 합니다 - 시국선언을 보면서,故박종철 편지를 읽다 6월 10일 이 다가옵니다. 6월 항쟁 기념일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다시 살아나야 할까요. 새벽에 6월 항쟁 기념관 사이트에 들어가 이런 저런 자료(그 당시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문)를 살펴 보다가 6월 항쟁의 기폭제(6월 항쟁 1기를 연~)가 되었던 박종철과 만났습니다. 박종철이 살아있을 때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고향이 같고 연배가 저와 비슷합니다. 내가 1년 선배 되는군요. 그래서 그런지 6월 햇살아래 설 때면 박종철이가 가끔 떠오릅니다. (고향과 나이를 들먹여서 죄송합니다/이런 발언도 학력,지연을 강조하는 권위의 유산이지요) 공안당국에 붙잡혀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6월이며 생각나는 사람을 들라면 박종철과 이한열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름 없.. 2009. 6. 5.
민심이 서울광장을 열었다 * 사진자료 :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오늘 새벽 서울광장을 에워싸며 봉쇄 하고 있었던 전경버스 32대가 철수 했습니다. 시민들 품으로 서울광장을 다시 돌려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서울광장은 열렸지만, 민심을 활짝 받아 드렸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서울대학교 교수, 중앙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이어서 다른 대학 교수들도 시국 선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왜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6월에 시작했을까요. 잘 아시다 시피 1987년 전 후로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은 6월 항쟁을 이끄는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습니다. 살벌한 군사 정권에서도 상아탑의 지식인들은 상아탑의 앵무새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민주를 갈망하는 수많은 민심을 대변해 주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과연 지난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역사공부를 제대로.. 2009. 6. 4.
시국선언을 넘어,21세기판 만민공동회 개최 - 시국선언을 넘어, 만인의 광장으로 ▲ 20세기판 만민공동회 개최는 가능 할까?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1898년 10월 28일에서 11월 2일까지 6일간 종로에서 열린 만민공동회. 서재필이 중심이 되어 만든 독립협회가 친러정책 반대와 자주외교를 표방하며 시민·단체회원·정부관료 등과 함께 참여한 대규모 군중집회를 통해 고종에게 ‘헌의 6조’를 건의하게 됩니다. 고종은 결국 ‘헌의 6조’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보수세력에 의해 탄압을 받게 되지만.... 헌의 6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일본인에게 의부(依附)하지 말 것. 둘째, 외국과의 이권계약(利權契約)을 대신(大臣)이 단독으로 하지 말 것. 셋째, 재정을 공정히 하고 예산을 공표할 것. 넷째, 중대 범인의 공판과 언론·집회의.. 2009. 6. 3.
6월 항쟁,6월 광장을 열어야 하는 이유 ▲ 2009년 6월 어떻게 광장을 열고, 이어나갈지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박종철과 이한열 수많은 민주인사들의 희생이 기폭제가 되어 일어났던 6월 항쟁. 1987년 6월 항쟁과 2009년 6월 항쟁 기념일은 우리에게 무엇이 되어 다시 살아 나야 되는 걸까요. 6월 항쟁은 단지 역사 속 기념일로써 나이를 더해가야만 하는 합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는 많은 국민들에게 아픔과 연민을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과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들을 일깨워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잠시 “광장‘을 막았지만 “광장”은 다시 열릴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모두를 위한 진실인 것처럼 빗대어 말합니다. 이제 생활인으로서 돌아가라고, 더 이상 죽은 자를 이용하지 말라고, 경제 위기에 도.. 2009.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