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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점일기

책과 독자를 잇는 손뜨개이야기?

by 밥이야기 2017.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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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은 밥집대통령, 손뜨개대통령? 

- 책과 독자를 잇는 손뜨개이야기?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뜨개질 장면을 보고 채널을 고정시켰다. 내가 어린 시절 뜨개질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당시 어머니와 뜨개질은 익숙한 일상이었다. 바늘이 움직일 때마다 한 코씩, 한 단씩 늘어났다. 그리고 내가 잊을 만하면 완성된 스웨터가 벽에 걸려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에 미미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마 지난 추억의 파편 하나가 나를 찌른 모양이다.

TV화면 속에서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은 습관처럼 뜨개질을 하고 있다. 그 날렵한 손가락의 움직임에 맞추어 나 역시 기억의 손뜨개질을 시작한다. 먼저 슬픔과 기쁨, 행복과 고통, 좌절과 분노들로 끊어졌던 실들을 이어야만 했다.

TV 속의 모자가 이야기 한다. 야구를 사랑했던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열차 사고를 당했다. 발목을 심하게 다친 아들은 야구에 대한 꿈을 접었다. 생계를 위해 두 사람은 뜨개질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손뜨개로 어언 60년을 지냈다고 한다. 뜨개질은 사업으로 성장했고, 이들은 서민부자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손뜨개로 갑부가 되었다고? 책방을 운영해서 큰돈을 벌었다는 것만큼이나 낯설었다. 멍하니 과거를 탐색하던 내 두 뇌가 갑자기 리다이렉션(redirection) 명령을 실행했다. 이어 뜨개질knitting은 편집editing과 오버랩 되면서 모든 생각이 미래의 출판, 미래의 책방으로 모아졌다. 그러고 보니 뜨개질과 출판행위는 서로 닮은 점이 많다.

그 후 나는 우연히 미국의 한 블로거가 포스팅한 글을 읽게 되었다. ‘과연 손뜨개로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취미삼아 늘 뜨개질을 했다. 어느 날 그녀는 손뜨개가 취미에 그치지 않고 수입으로 이어질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손뜨개 옷을 팔아서 큰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의류업체나 출판사에 어머니가 만든 뜨개질 도안을 팔면 큰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녀의 어머니는 뜨개질 전문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방송된 뜨개질 부자 역시 단순히 뜨개질을 하고, 그 생산물만 팔지 않았다. 도안을 직접 그리고, 뜨개질을 가르치고, 실과 부자재를 팔고, 커피도 팔았다(한국 온라인 중고매장에서 커피를 팔 듯). 이제 손뜨개와 서민갑부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나는 뜨개질의 미학을 책의 미학에 접목시켜 보았다. 손뜨개의 코 하나하나가 흰 종이 위의 까만 활자가 되었다.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급변하는 세계에서 뜨개질은 곧 행동주의(activism)를 대변한다. 손뜨개 옷이나 책이나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부단한 움직임이 수반된다. 21세기의 DIY운동과 더불어 손뜨개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새로운 사회적 현실을 만들어내는 한 방법이 되고 있다. 특히 소비문화와 미디어 포화상태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기성세대가 뜨개질을 보고 과거를 회상할 때, 젊은이들은 뜨개질의 속성에서 기존의 지배적인 코드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찾는다. 그뿐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창의력을 통해 미래 대안을 찾는다. 이들은 과거에는 전혀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서로 소통하고 학습하기 때문이다. 90년대 한창 유행하던 그물코란 단어가 커뮤니티라면 손뜨개는 의사소통이며 커뮤니케이션이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의 여성학 교수인 스테파니 스프링게이는손뜨개와 시민참여운동의 미학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뜨개질은 상호 관계의 교육학이다.”라고 말한다.

 

작은 가게를 부활시켜야 하는 이유?

이 시대에 미래를 보장하는 직업이 존재하는가? 대다수가 없다고 답할 것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돈이 없으면 돈을 벌어야 한다. 어떻게 벌어야 하나? 무슨 일이든 '모두의 일', 곧 협업을 해야 한다.

한 예로 책과 책방, 출판 관련 사업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뜨개질해야 한다. , 디지털콘텐츠 사업과 에 어깨를 걸어야 한다. 알다시피, 한국 출판 산업은 여전히 힘들다. 너도 나도 대안을 말하지만 여전히 부진하다. 전자책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아마존은 킨들kindle내세우면서 책 판매와 소통을 통한 콘텐츠를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내로라하던 대형 서점이 문을 닫고, 출판사들의 인수합병이 요란하다. 이 와중에 작은 출판사, 책방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커뮤니티를 통한 협업과 공유가 필요하다. 어떻게 해서든지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현 시대에 맞는 홍보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책은 물질이며 상품이기도 하다. 책 한 권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나무에서 종이가 되기까지, 손뜨개와 같은 글들이 스토리가 되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긴 여정을 거칠까? 그러나 이런 말은 한 톨의 쌀 이야기만큼이나 약해 보인다.

분명한 사실은 책의 가치는 날로 떨어지고, 책을 구입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렵고 책값이 비싸다는 이유 때문일까? 경제상황이 안 좋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잖은가. 책과 독서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식사 한 끼, 술 한 잔과 더불어 도서 구입비가 지출항목에 포함되어야 한다. 책의 가치는 책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잉태된다. 책 한권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말은 결코 퇴색되지 않는다. 그 다음 단계는 책을 선별, 선책 하는 일이다. 북 큐레이터가 필요하다.

  나는 아직 책방 순례 중이다. 이름은 근사한데 막상 들어가 보면 책다운 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서점, 문고, 독립책방, 헌책방 등 접미사도 다양하다. 간혹 언론에 오르내린 독립책방(출판)의 경우 진귀한 현상이 벌어진다. 찾는 사람들은 많은데 이들은 책을 보기위해, 책을 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기 위해 오는듯하다. 책을 꺼내들기 보다는 폰을 들고 연신 찰칵댄다. 돈 많은 주인이 취미 삼아 연 책방의 경우, 프리터(프리랜서+아르바이터)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이 책을 좋아하니 망정이지, 손님 없는 책방에 가만히 앉아 책 냄새만 맡는다면 고문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신촌에 있는 헌 책방 이름처럼 숨어 있는 책을 기대하며 앞으로도 계속 서점을 순례할 생각이다.

1984》《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조지오웰은 다양한 에세이를 많이 남겼다. 그의 에세이집 나는 왜 쓰는가가운데 서점의 추억이란 칼럼이 내게는 예사롭지 않다.

대부분의 서적상들은 책 내용을 잘 모른다.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면 그들이 필요한 책을 광고하는 업계 신문을 보면 된다.(중략) 내가 서점 일을 평생하고 싶지 않은 진짜 이유는 그 일을 하는 동안 내가 책에 대한 애정을 잃었기 때문이다. 서점상은 책에 대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책이 싫어지게 된다. 더 나쁜 건 언제나 책 먼지를 털고 책을 이리저리 옮겨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조지 오웰은 헌책방에서 시간제근무 직원으로 일을 했다. 그는 헌책방에서 많은 책을 읽고 나자 책이 시시했고 지긋지긋했다고 한다. 솔직한 표현이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여하튼 책을 읽는 것도, 책을 판매하는 것도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다. 책을 한권이라도 더 팔려면 아무래도 지역의 특성에 맞는 책들을 선택해야 한다.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목록에만 의지하면 지역 책방의 특성을 잃게 될 것이다. 특히 독립서점은 서점을 열기 전에 주변지역 상황과 주민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성공적으로만 운영된다면 큰돈을 버는 것은 물론 주변 커뮤니티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wikiHow;‘서점 오픈 매뉴얼 8단계참조)또한 책 만 파는 것은 책방의 책임을 다한다고 볼 수 없다. ‘서점은 영어로 북스토어(Book Store)’이다. , 잡화점(Store)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커피도 팔고, 책과 연관된 소품도 팔 수 있다. 이미 문구류나 음반 등을 함께 판매하는 곳도 꽤 된다.

뜨개질 서민부자에게서 책방의 미래, 출판사업의 미래를 발견한다. 주변 커뮤니티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내고 제공한다. 손뜨개 모자처럼 이야기를 팔고, 함께 학습을 하고, 시즌에 맞는 액세서리도 선보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방을 찾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TV속의 뜨개질 서민갑부가 말한다. 손뜨개는 마무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책과 손뜨개의 가장 큰 공통점은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과 접촉가능성connectivity이다. 아무쪼록 많은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면서 손끝의 감촉을 즐기기를 바란다. 역시 뜨개질과 편집은 같은 맥락임을 확인했다. 독서 생태계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 책의 발견, 독자 발굴, 저자와 독자의 만남을 통해 팬을 찾아야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기술과 제품을 편집한 것이 아이폰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편집자가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