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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점일기

리더Reader와 리더Leader

by 밥이야기 2017.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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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은 많이 사라졌지만, 책방 붐이 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대형 서적도매상 송인서적 부도 충격이 발생했지요. 하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박원순 서울시장이 페이스북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한다...한국출판인협회와 상의해 시와 교육청, 구립도서관 등 공공기관을 통한 총 12억원 서적구매를 조기에 집행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대형 서적도매상이 무너지면 출판사, 책방에 영향을 줍니다. 박 시장은 이어 "신용보증재단을 통해 영세업체 긴급 경영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으니...

 

* 관련 보도 기사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10/0200000000AKR20170110193300004.HTML?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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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Reader리더Leader

글/유창주(밥이야기)

                    *이미지출처:https://kr.pinterest.com/source/quintbuchholz.de

 

 

을 쓰는 작가나 출판사는 늘 대박을 꿈꾼다. 슈퍼 베스트셀러의 꿈은 증권가의 개미투자가의 꿈이요, 로또복권의 꿈과 별로 다를 바 없다. 게다가 21세기, ‘멀티미디어 제국속에서 책으로 대박이 날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수준이다.

미디어 전문가 셔먼 영 교수는 이렇게 인용한다.

나는 소설을 읽지 않아. 좋은 문학 비평을 더 많이 읽는 편이라 문학비평을 읽으면 비평가들의 생각뿐 아니라 해당 소설가들의 사상까지 전부 파악할 수 있으니까.”(영화 <메트로폴리탄>에 등장하는 탐 타운센드의 대사)

가면 갈수록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도 세계 베스트셀러는 연이어 탄생하고, 우리가 알지도 못하던 책들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통해 알게 된다. 영화를 보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은 그 영역이 다르다. 또 책을 읽는 것과 실제 경험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차원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맏형은 책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역사 속에서 시공간의 제한을 가장 덜 받는 것이 책이기 때문이다.

멀티미디어 제국에서 책이 살아남으려면 Reader가 있어야 한다. Reader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독일 법률가였던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더 리더-책을 읽어주는 남자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다. 영화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다. 서른여섯의 한나와 열다섯 살의 마이클 사이, 결코 흔치 않은 관계를 통해 이 책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한나는 외진 길에서 토하고 있는 마이클을 발견한다. 한나 덕분에 살아난 마이클은 몸이 회복된 후 한나와 미묘한 관계에 빠진다. 그리고 둘 사이에 은밀한 관계가 형성된다. 이 둘 사이엔 육체적 관계와 더불어 책읽어주기가 신성한 의식처럼 행해진다. 마이클이 한나에게 읽어준 책은 호머에서 D.H. 로렌스의 작품까지 그 폭이 넓다.

그러나 마이클은 법대교수가 되었고, 한나는 전범으로 재판에 송부되었다. 미하엘은 한나가 문맹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한나가 문맹이라는 사실만 증명하면 무기징역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나는 문맹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기꺼이 사형에 가까운 무기징역을 당한다. 문맹이라는 사실이 이 영화에서만큼 가슴 저리고 안타까울 수 있을까?

 

유대인 학살의 주범인 히틀러는 사악한 Leader였다. 히틀러는 어떤 책을 읽고 자랐을까?

이명박 정권 때 팟캐스트 <나꼼수>가 한창 인기를 끌 때의 이야기이다. 진행자들의 대화 속에 박근혜와 책 이야기가 등장했다. 아무개 씨가 그 집을 갔었는데 책장에 책이 없더라는 것이다. 몇 권이 있긴 있었지만 증정도서 정도였다고 했다. 아마 그 당시 진행자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녀가 ‘Reader’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물론 책장에 책이 꽂혀 있지 않다고 해서 책을 안 읽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른 대목이 몇 줄이라도 들어 있는 책들이 순식간에 서점에서 자취를 감추는 것을 보면 누군가 대신해서 읽기는 읽는 모양이다.

우리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을 Leader로 뽑았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녀는 Leader가 아니었다. 이 사실을 암시하는 조짐들이 이미 무수히 있었지만 모두 묵살되거나 왜곡되었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은 이런 꿈마저 짓밟는 사건이 터졌다. 이들은 마치 청와대에 도깨비 방망이라도 숨겨 놓은 모양이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방망이를 두드려 댔다. 이제 평범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이 땅의 국민들에게서 로또의 꿈마저 빼앗아 가버렸다.

 

책의 권력권위

권력권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공주라는 별명을 지닌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과 권위가 이미 추락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 또 하나의 정치 게이트가 생겨났다. 그리고 언론매체는 온종일 최순실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토해낸다. 대통령과 그녀의 관계를 몇 단어로 요약해보면 탐욕과 이기주의이다. 국민들이 분노했다. ‘하야를 외치는 국민들은 함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일찍이 대통령은 문화융성을 외쳤다. ‘문화란 무엇인가? 물론 문화가 무엇인지 글로 정의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굳이 사전적 의미를 정리해보면 문화는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다.” 문화에는 도덕도 포함된다. 그리고 문화는 공동체, 혹은 집단, 민족이 공유하는 것이다.

문화의 상징체계와 도덕에 초점을 맞추면, 상호작용과 소통이 문화의 핵심요소가 된다. 또한 언어와 글은 매개체가 된다. 뒤집어 말한다면 소통 없는 문화는 문화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문화의 정의를, 개념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문화융성을 외쳤을까?

어쨌든 대통령과 측근들은 책을 읽기 보다는 역사 속에 새로운 장, 해괴한 장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을 나는 잠재적 책으로 부르겠다.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가 저지른 국정농단을 주제로 한 책이다. 대한민국의 국정농단을 보노라니 에라스무스가 번역한 판도라의 상자가 생각난다.

에라스무스는격언집우신예찬을 낳은 네덜란드 태생의 인문주의자요, 세계주의자이다. 에라스무스는 고대 헤시오도스가 지은 서사시, 신통기Theogony를 라틴어로 번역했다. 특히 판도라 상자’(*원래는 판도라의 항아리이다. 다만 에라스무스가 두 단어를 착각해서 상자로 굳어졌다.)이야기가 떠오른다. 판도라 상자가 인류에게 죽음과 질병과 온갖 악한 것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국민이 생각지도 못한 청와대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너무 비약적인 표현이 아닌가?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 여인으로 인해, 또 그 옆의 시종들로 인해 이 나라에 절망불안이 이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했고, 무엇을 가로챘고, 무엇을 좌지우지 했는지 반복해서 들을 때마다 이 나라엔 부정 바이러스, 절망 바이러스가 퍼져나간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에라스무스는 격언집에서 바보들은 일이 터진 후에야 깨닫는다고 말한다. 이렇게라도 깨닫기만 한다면 오죽 좋겠는가? 박근혜대통령은 퇴진” “하야를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 이 구호는 그냥 물러나라는 뜻 이상이다. 권력을 갖고 놀 만큼 갖고 놀았으면 제 자리에, 즉 국민에게 돌려달라는 뜻이다.

저 바다 건너 미국국민도 멘탈붕괴 현상을 겪고 있다. 여론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대다수가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믿었는데, 상자를 열어보니 도널드 트럼프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AP/뉴시스에 따르면, 미국 뉴욕 5번가 트럼프 타워 근처에서 대규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한 여성이 '트럼피즘은 파시즘'이라고 쓴 종이를 들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폭락하고 패닉현상이 세계 곳곳에 퍼졌다. 한국은 트럼프현상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박근혜대통령의 차후 행로가 단지 권력 이동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단지 공만 넘기는 것이라면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이 대한민국은 여전히 표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답은 단순하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

헌법도 책이다. 무엇보다 통치자에겐 필독서이다. 본인이 못 읽으면 옆에 정직한 Reader라도 여러 명 두어야 한다. 1112일 촛불시위는 100만 명에 이르는 국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입김만 불어도 꺼지는 촛불이 모이니 장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대통령이 국민의 진정한 뜻을 못 읽는다면 대통령이야말로 문맹이다. 그리고 그러한 대통령을 둔 우리는 너무도 수치스럽다. 책을 읽어주는 남자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한나가 죽은 후 그녀가 모은 돈을 미하엘이 유대인 단체에게 전하려 했지만 거절당한다. 이유인즉 유대인에게는 문맹이 없습니다.”

시대와 등장인물만 다를 뿐 역사 속에는 이와 유사한 국정농단이 한 두 건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역사 속에 사라졌지만 우리는 책을 통해 그들의 만행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책의 권력이고 권위이다. 책 속엔 무엇이든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와 수천 년의 역사와 바닷가 모래알 같은 인물들을 다 담아낼 수 있다.

옛말에 낮 말을 새가 듣고 밤 말을 쥐가 듣는다 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속담인가. 그러나 이 시대에는 암실에서의 꼼수와 음모로 영원한 제국을 만들 수는 없다. 이것은 지극히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사회심리학과 신프로이트주의를 열었던 독일 출신인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파국에 담긴 글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진정 도움이 될 대책은 사실상 아무것도 진행되는 것이 없다. 통치자도 피통치자도 마치 대책을 알고 그것을 진척시키는 듯이 호도(얼버무려 넘김)함으로써 자신들이 양심과 아울러 생존에의 소망을 마비시키고 있다...‘미소 띤 얼굴을 한관료주의적 파시즘”. 대통령뿐만 아니라 여야 정치인들도 호도하고 있지 않을까?

 

 모이체스 나임 권력의 종말에 대한 <월스트리트 저널> 추천사를 인용한다.

이 책은 스스로 링컨 같은 인물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거대 정부와 대형 은행, 미디어 거물, 부의 집중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1 퍼센트의 권력을 비난하는 시점에서 나임은 정치, 기업, 종교, 노동조합 등 모든 분야의 지도자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무력한 상태에서 더 크고 복잡한 문제에 직면에 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