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cancer). 이름만 들어도 불안해 보인다. 암은 죽음의 길이기도 하다. 특히 삶이 가난하다면 공포에 가깝다. 암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국 40∼50대 남성의 암 발생률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간암. 지난해 보건복지부 발표 결과에 따르면, 10년 새 간암 환자 발생률이 약 2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간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우리나라가 1위다. 간은 탄수화물 및 아미노산, 단백질 대사에 관여하고 해독 작용을 하는 중요한 장기다. 간암은 간세포에 악성 종양이 생기는 것을 말하는데 만성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 잦은 음주와 간 경변 등이 주요 원인이다. 간암은 다른 암과는 달리, 몸에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만큼 치명적이다. 발견됐을 때는 이미 암으로 간이 파괴된 경우가 많다.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환자의 몸 상태에 따라 치료법을 달리한다. 암세포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혈관을 막는 경동맥 화학 색전술이나 항암제 투여, 간이식 등의 방법을 쓴다.
그러나 간암은 완치율이 매우 낮다. 간세포를 빠르게 파괴해서 치료가 어렵기 때문이다. 발견도 어렵고 치료도 어려운 간암. 정복할 길은 과연 없는 걸까. 최근 국내의 한 벤처기업이 간암 치료의 새로운 방법을 발표했다. 천연두 예방 백신에 사용되는 백시니아(vaccinia) 바이러스를 이용한 것으로, 이 바이러스를 변형시켜 암세포에서만 활동하도록 만든 치료제다. 암세포는 빠른 시간 안에 자신을 복제하고 증식하는 성질을 가졌다. 그래서 다른 장기까지 퍼뜨리며, 재발까지 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에겐 암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왜냐하면, 바이러스는 스스로 복제하고 증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미생물을 키우는 숙주 세포에 붙어서 복제하고 수를 늘린다. 기생해야 사는 바이러스에게 암세포는 최상의 조건인 셈이다. 이 치료법은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변형시킨 뒤 환자 몸에 주사해서 암세포를 감염시키는 방식이다. 현재 이 치료제는 글로벌 임상 3상에 들어갔고, 국내에서도 임상 3상을 준비하고 있다. 연구진의 이러한 임상 시험 결과는 세계적 의학전문지 '네이처 메디신'에 소개되기도 했다. 또한 연구진은 이 치료제를 기반으로 유방암과 대장암 등 다른 고형암에도 적응증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어떤 식으로 암세포를 이겨내는 걸까? 암세포는 증식이 무척이나 빠흐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화학적 항암제는 증식이 빠른 세포를 찾아가게 설계돼 있다. 그렇다보니 분열이 빨리 이뤄지는 머리나 피부 등의 정상세포까지도 항암제의 피해를 함께 보게 된다. 이 점에 착안해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조작한다. 바이러스는 세포에 기생해 번식하려는 본능이 있다. 이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조작해 증식이 아주 빠른 세포, 특히 암세포를 찾아가도록 만드는 것. 일단 바이러스가 암세포에 정착해 기생을 시작하면 빠르게 증식을 한다. 바이러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암세포가 '빵' 하고 폭발하게 되는 기전이다. 임상 실험에 사용된 항암 바이러스는 여기에 또 하나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폭발한 암세포가 뿔뿔이 흩어지면서 암의 항원이 노출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몸 안의 면역세포가 이 암세포 항원을 잡아먹게 된다. 외부 화학물질이 아닌 자기 몸 안의 면역력이 암을 이겨내는 것. 당연히 부작용이 거의 없다. 바이러스에 대한 반응(약간의 발열 등 감기몸살 증상)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런 항암 바이러스로 사용되는 바이러스는 천연두 백신으로 100년 넘게 사용돼 온 우두 바이러스. 안전성이 입증돼 있고, 바이러스 크기가 커서 유전자 조작이 쉽다는 것이 장점. 오 마이 갓. 잘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새로운 항암제는 국내의 한 바이오벤처기업이 사활을 걸고 개발해 왔다. 바이러스나 면역력을 이용한 암 치료 개념이 이미 선진국에서는 이론화 돼 있기 때문에 이 업체의 행보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관심을 끌고 있다. 실제 미국 FDA에서는 지난해 새로운 치료법에 대해 글로벌 임상 3상을 허가했다. SBS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해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넉달 만에 완치됐다. 아흔이 넘은 노인을 암으로부터 해방시켜준 것은 ‘키트루나’라는 면역 항암제였다. 이 물질은 최근 폐암과 신장암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시판 승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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