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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핑크 코끼리 vs 신촌 필리버스터까지?

by 밥이야기 2016.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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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지난 국회 필리버스터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유플렉스 신촌점 앞 광장에서 다양한 여성들이 증언의 마이크를 잡았다. 서울 강남 한복판 화장실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여성들이 전반적인 여성폭력을 중단하라며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본래 필리버스터란 국회에서 장시간 발언을 해 표결을 막는 행위를 뜻한다. 시민단체 한국여성민우회는 20일 오후 5시부터 이튿날 새벽 1시까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유플렉스 건물 앞에서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매체에 따르면, 첫 번째 참가자 오휘씨는 "우리 모두 공동체 안의 여성혐오를 민감하게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며 "여자인 나 또한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1년 전만 해도 남자 동기들에게 술을 따라줬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행동을 했다"고 했다. 생후 8개월 된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한 참가자는 "내가 중형견을 데리고 산책을 다니면 '쓸모 없는 개는 집에 놔두라' 등 온갖 험악한 말을 듣는다"며 "하지만 아버님이 그러면 험한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여성에게 폭력적 언어를 쓰는 세태를 비판한 것이다. 필리버스터에는 정치인도 참여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번 사건은 개인적인 비극이 아닌 사회적 문제"라며 "약자에 대한 범죄는 가중처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대 국회에서 관련 제도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자신의 신원이 공개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가명을 내세워 발언을 하거나 얼굴에 가면을 쓴 경우도 있었다. 민우회 관계자는 "신원이 노출될까 두려워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취소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발언을 주저한 사람 중 한 명은 성폭력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나는 피해자로서 동정받기 보다는 생존자로서 존중받고 싶다"며 정말 잘살고 싶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고 했다. 이 고백에 청중은 박수 갈채를 보냈다. 범죄행위부터 일상적 폭력까지 범위는 넓었다. 스스로를 아동 성폭력의 생존자라고 표현한 한 참가자는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중간 중간 옛 기억에 괴로운 듯 말을 멈추기도 했다. 그 때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그녀는 “학원을 마치고 일찍 집에 가기 위해 가로질러 가는 길을 가다 남녀 공용화장실에 들어갔다”며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커터 칼을 든 남성 두 명이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울지 않으려 미리 대본을 주비해왔다던 이 참가자는 사람들의 지지의 눈길에 결국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는 여성들의 공감과 소통의 장이었다. 그간 주변사람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수십 명의 여성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어릴 적 여성스럽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동네 오빠에게 몇 년간 괴롭힘을 당했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가 따라주는 술이 더 맛있지 않느냐며 남자 동기들에게 술을 따라줬다” 터져 나오는 자기고백에 공감의 박수가 쏟아졌다. 일부러 필리버스터를 보러 일산에서 왔다는 김모(22·여)씨는 “강남역 추모현장에 가보지 못해서 발언하시는 분들 얘기 듣고 공감하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앞에 앉아 누구보다 열심히 박수를 쳤다. 김씨는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열리는 추모집회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 20일 한 사람이 핑크 코끼리 탈을 쓰고 강남역 10번 출구에 나타났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게시글 속 사진에는 핑크 코끼리 탈을 쓴 사람이 ‘육식동물이 나쁜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동물이 나쁜 겁니다“라며 ”선입견 없는, 편견 없는 주토피아 대한민국. 현재 세계 치안 1위지만 더 안전한 대한민국 남, 여 함께 만들어요“란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논란은 이 사람이 극우 성향 인터넷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회원이라는 의심을 사면서 발생했다. 게시글에 따르면 일부 추모객들이 핑크 코끼리 탈에 ‘일베충’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을 붙였다. 이어 일부 추모객들이 “당당하면 탈을 벗어봐라”라며 코끼리 탈을 벗기려고 하면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결국 경찰이 출동해 상황을 종료시켰다. 온라인에선 핑크 코끼리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추모현장인데 핑크 코끼리 탈은 너무하다"는 의견부터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는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핑크 코끼리가 들고 있던 피켓 내용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문구에 문제가 없다”, “자극하는 문구는 아닌 것 같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치안사건 현장에 ‘치안 1위’란 문구가 말이 되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