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군은 고구마 마을 이야기가아니다? 고구마 이야기가 아니지만, 고구마는 1600년경 중국에서 재배하던 것이 일본 오끼나와 지역에 전해졌고 그 뒤 우리나라에는 이조판서를 지낸 조엄이란 분이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대마도에서 재배법과 저장법을 배워 오면서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은 고구려 이야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일본 내 고구려 마을인 '고마(高麗)군' 창설 1천300주년 기념비가 23일 고마군이 위치한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에 세워졌다고 한다. 고마군은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군에서 폐지돼 이름만 유지하다가 1955년 행정구역명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고마군의 창설자이자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 약광을 모신 고마신사가 남아 있다. 고마군과 약광을 기리고자 2010년 6월 결성된 고마약광회는 이날 고마신사에서 기념행사를 열고 약광이 일본으로 건너온 고구려 유민들을 모아 고마군을 만들었다는 '속일본기' 내용을 비문으로 적은 기념비를 공개했다. 행사는 고마약광회·고마신사·히다카시 공동 주최로 열렸다. 세로 1.4m·가로 2m 장방형 모양의 기념비 중앙 윗부분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발견된 '삼족오'(三足烏·태양 안에 산다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까마귀)가 새겨졌다. 그 아래에는 '서기 703년 4월 4일, 종5위하 고려 약광에게 왕성(王姓)을 내리다. 서기 716년 5월 16일 스루가(駿河), 가이(甲裴), 사가미(相模), 가즈사(上總), 시모우사(下總), 히타치(常陸), 시모쓰케(下野) 7개국의 고려인 1천799명을 무사시(武藏)국에 이주시킨 게 고려군의 시초다'라고 쓰였다. 여기서 고려는 고구려를 의미한다. 뒤편에는 기념비 건립을 위해 힘을 모은 회원들의 이름이 적혔다. 약 6년 전 10명도 채 안 되는 회원에서 시작한 고마약광회는 현재 회원 수가 223명에 달한다. 약광의 후손이자 고마신사의 제60대 궁사(宮司·신사의 최고 책임자)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를 비롯해 일본의 한국 도예가인 심수관의 후손 심일휘 선생, 지난달 별세한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토(京都)대 전 명예교수 등이 포함됐다. 고마약광회는 원래 역사를 공부하는 모임에서 출발했지만, 일본 내 유일하게 남은 고대 한국 마을인 고마군과 고마신사를 기리고자 지난 1년간 기념비 건립을 추진해 왔다. 고마약광회 김영진 이사장은 "약광의 업적을 기리고 양국 친선 나아가 동북아시아 친선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기념행사와 기념비 건립을 추진했다"며 "재일교포는 물론 일본에서도 우호적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한국 측에서는 유흥수 주일한국대사, 김호섭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라종일 전 주일한국대사 등이 왔다. 유 대사는 "1천300년 지난 지금까지 고구려인의 자손이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이야말로 한일 우호관계 역사의 산증인"이라며 "양국 간 일어난 나쁜 일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좋은 일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세 문부과학상은 "이런 작은 행사 하나하나가 모여 한반도와 일본의 좋은 관계를 만들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자신이 지은 시('고마신사 휘파람새 우니 약광')를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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