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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밥

비트세대, 여전히 ‘너무 많은 것들’

by 밥이야기 2015.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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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세대, 여전히 ‘너무 많은 것들’
 

1997년 개봉한 영화, 정우성과 고소영이 출연한 영화도 <비트Beat, 1997>와 발음만 같은 비트(bit). 이 두 단어는 발음만 같을 뿐 뜻이 완연히 다르다. 그러나 이 시대“로 불린다.  정보가 넘쳐날 뿐 아니라 그 전달 속도 상상을 초월한다. 먼저 위키 백과사전 ko.wikipedia.org 에 수록된 ‘비트 세대’를  검색해본다. 전철 안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한 검색이다. 스마트폰 작은 화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뜬다.

“비트 세대(beat generation)는 1950년대 미국의 경제적 풍요 속에서 획일화, 동질화의 양상으로 개개인이 거대한 사회조직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항하여, 민속음악을 즐기며 산업화 이전시대의 전원생활, 인간정신에 대한 신뢰, 낙천주의적인 사고를 중요시하였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1920년대의 '상실세대(Lost Generation)'처럼 기성세대의 주류 가치관을 거부 하였다.”

순식간에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인터넷과 위키백과의 힘이다. 과거(인터넷 시대가 열리지 않을 때)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정보기술이 급성장하면서 디지털시대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제 이러한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위해 온전한 힘을 발휘하려면 인문학과 소통해야 한다. 즉 과학과 철학이 융합해야 한다. 그런데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일부 대학에서는 철학이라는 학문의 가시적 효용성이 없다는 이유로 아예 과 자체를 없애고 있다.


1950년대부터 미국의 '저항문화'를 열었던 시인 철학자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1926~1997)를 예로 들어보자. 그의 사상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면서 미국 저항운동의 시발이 되었다. 또한 잭캐주억의 『길 위에서』와 같은 미국고전은 일관된 스토리도 문학적 구성도 갖추지 있지않다. 다만 노래를 부르듯 반황하는 세대들의 외침이 튀어나올 뿐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비트박물관에는 잭캐주억이 썼던 타자기가 전시되어 있다. 비트세대의 운동을 이끌었던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1926~1997)의 시집 『외침』은 국내에서도 출간되었다. 그가 쓴 ‘너무 많은 것들’이라는 시를 음미해보자. 그리고 그의 시대와 현시대를 비교해보자.

 

 

 

* 사진 출처 : https://www.pinterest.com/pin/489133209502765380/



“너무 많은 공장들 너무 많은 음식 너무 많은 맥주 너무 많은 담배 너무 많은 철학 너무 많은 주장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공간 너무나 부족한 나무 너무 많은 경찰 너무 많은 컴퓨터 너무 많은 가전제품 너무 많은 돼지고기 회색 슬레이트 지붕들 아래 너무 많은 커피 너무 많은 담배연기 너무 많은 종교 너무 많은 욕심 너무 많은 양복 너무 많은 서류 너무 많은 잡지 지하철에 탄 너무 많은 피곤한 얼굴들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사과나무 너무나 부족한 잣나무 너무 많은 살인 너무 많은 학생 폭력 너무 많은 돈 너무 많은 가난 너무 많은 금속물질 너무 많은 비만 너무 많은 헛소리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침묵”(너무 많은 것들/알렌 긴즈버그)


비트세대를 이끌었던 또 다른 인물은 윌리엄 버로우즈(1914-1997)이다. 그는 하버드의대를 졸업했지만, 자유분방하게 남미를 떠돌면서 기괴한 삶을 살았다.  “ '실제 세계'와 '신화와 상징의 세계' 사이의 경계선 따위는 없다”고 그는 말했다. 음유시인 밥 딜런은 또 어떠한가? 그는  사람의 존재와 사물, 감각, 환각이 주는 충격. 현실의 부조리를 온 몸으로 노래했다. 대중음악을 한 단계 끌어올린 신화적 인물이다. 밥 딜런은 비트세대와 소통하면서 히피문화 탄생에 큰 역할을 했다.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를 보면 앤딩크레딧 끝 부분에 다음과 같은 자막이 이어진다.
"이 영화를 윌리암 버로우즈(William Burroughs)와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에게 바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윌은 천재적인 수학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과 아버지의 폭행에 시달린다. 학교는 고사하고 잡일을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다 사고를 친다. 그런데 대학에서 청소일을 하던 중 그의 재능이 알려진다. 그의 앞에 인생을 바꿀 기회가 주어진다. 윌은 선택을 해야 한다. 윌의 선택은 뜻밖이다. '윌'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자유롭고 저항적인 삶을 살았던 비트세대에 대한 헌사이다.


또 다른 비트(bit:binary digit의 약칭)시대인 오늘날은 어떤 한가? 0과 1이란는 숫자체계로 형성된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각양의 콘텐츠를 인터넷세게로 흘려보낸다. 긴즈버그의 시에 등장하는 어구처럼 “너무 많은” 것들이 등장했다가 쉽게 사라진다.    너무 많은 말들. 너무 많은 소외된 현실. 너무 많은 스마트폰 중독자, 이 시대에도 저항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면 또 다른 비트운동을 전개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에서는 확산되고 티파티(Tea Party)운동처럼 지나간 운동을 재해석해서 일반인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다만 우리에겐 티파티가 아니라 ‘신바람나는 파티’가 필요하다. 

* 티파티 운동(Tea Party movement)
 2009년 미국에서 시작한 보수주의 정치 운동으로 18세기 보스턴 티파티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다. 복지라는 명목으로 중산층,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행위를 반대하는 극우보수가 중심이 된 운동이다. 조세 저항 운동으로 특정 정당이 없으나 정치적으로는 보수 성향을 띠는 ‘극우 반정부 운동’을 대변한다. (위키백과와 네이버지식백과 사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