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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시대의 지성 리영희 타계, 새벽에 눈물 흘린 이유?

by 밥이야기 2010.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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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아온 75년이란 세월은 최근 몇 해를 제외하면 한마디로 ‘야만의 시대’였다. 일제 식민지시대의 소위 ‘해방’ 후 50여년의 반인간적 생존환경이었다”(리영희 자서전 '대화' 중에서)

 

새벽 3시, 잠시 새우잠을 곧 세워 눈을 떴다. 컴퓨터는 켜져 있고 인터넷 세상은 계속되고 있었다. 쓰린 속을 달래며 냉수를 마셨다. 곧 이어 들려온 이야기는 리영희 선생의 타계 소식. 그는 나와 가까이서 산다. 병풍처럼 둘리어진 수리산을 두고. 그는 숨졌다. 갑자기 80년대 초 대학생활로 리영희의 죽음은 나를 안내했다. 오늘 만큼은 선생도 아니요 스승도 아니요, 리영희라 부르자 친구의 이름처럼.

 

학창시절, 나를 눈뜨게 했던 책을 꼽으라면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 염무웅의 <민중시대의 문학> 이었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속 좁은 나의 생각을 전환시켜 준 책 중에 하나였다. 나를 책상이 아니라 대학 캠퍼스 바닥으로 인도한 책이었다. 그가 쓴 책 중에 하나인 <8억 인과의 대화>는 중국에 대한 나의 편협한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잠을 잘 수도 눈을 떠 있기에도 고단한 시간. 작업실 한편에 놓인 리영희 자서전 <대화>를 집어 들었다. 리영희는 지식인이 아니라 모순된 현실과 끝없이 싸운 지성인이었다.

 

리영희 자서전은 문학평론가 임헌영씨가 대담 형식으로 묶어 펴낸 책이다. 책을 펴니 머리말에 앞서 내가 쓴 글이 보인다. ‘ 소수의 소유 하에 있거나 독점화된 재산은 인류에게 재앙이다’ 존 애덤스가 말한 내용이다. 왜 내가 이런 글을 썼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세상은 정지되어 있는 것 같다. 새벽 3시 이니 참 난감하다. 냉장고 문을 여니 캔 맥주 하나가 눈에 밟힌다. 벌컥 마셨다. 리영희의 죽음은 눈물 날 정도로 나를 감성의 세계로 이끌지 못했다. 하지만 결코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눈물이야 서푼 짜리 오페라 보고 흘려보내면 되지만, 리영희는 그렇게 흘려보낼 수 없다.

 

리영희 자서전 <대화>를 다시 펼쳐 읽어본다. ‘ 긴 세월에 걸친 문필가로서의 나의 인생의 마지막 저술이 될 이 자서전을, 결혼 이후 50년 동안 자신을 희생하며 오로지 사랑하는 자식들과 못난 남편을 위해서 온갖 어려움을 힘겹게 극복하고, 굳건한 의지로 헤쳐온 존경하는 아내 윤영자에게 바친다.’

 

리영희는 사회의 모순과 싸웠다. 지금 와서 그가 쓴 글을 읽어보면 맞지 않는 내용 또한 많다. 하지만 그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위치에서 가장 진솔 되게 이야기를 한 기자였고 문필가였다. 새는 좌우로 난다는 것을 입증시켜 준 시대의 지성이었다. 빨갱이라는 모함 속에서도 오직 진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이었다.

 

리영희의 죽음은 요즘 우리시대의 지성인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는 말했다. ‘단순 기능직 전문가로서의 ’지식인‘이 아니라 시대의 고민을 자신의 고민으로’ 일체화시키는 사람이 지성인이라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잘 가소서...



리영희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진보학자. 1929년 평북 삭주군 대관면에서 태어났다.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역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신문대학원에서 연수했다.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이후 중소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어 1980년 3월 복직되었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되었다가 1984년 가을에 다시 복직되었다.

1985년 일본 동경대학 초청으로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그리고 서독 하이델베르크 소재 독일연방 교회사회과학연구소에서 각기 한 학기씩 공동연구에 종사하였다. 1987년 미국 버클리대학의 정식부교수로 초빙되어 'Peace and Conflict' 특별강좌를 맡아 강의하였다. 1995년 한양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 후 1999년까지 동대학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를 역임했다.

리영희의 글은 그가 겪어 온 역사적 사건들 속에 동시대의 통념을 뒤엎는 진실의 힘을 담고 있다. 현대사와 국제정치의 현실을 보는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불러일으킨 고전적 계몽서로 평가받는 그의 저서들은, 중국관계·베트남전쟁·일본의 재등장 문제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해내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또한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는 극단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저자의 육성으로 전하는, 지식인의 삶과 사상에 관한 기록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주요 국면을 살펴보기도 하였다. 한 인간으로서 부딪혀야 했던 갈등과 번민, 고통의 순간을 솔직하고 가식 없이 담아낸 그의 체험이야기는 재미와 감동을 더해주며, 나아가 한국 현대사에서 한 인간이 감당해야 했던 고뇌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지은 책으로 『전환시대의 논리』(1974), 『우상과 이성』(1977), 『분단을 넘어서』(1984), 『80년대 국제정세와 한반도』(1984), 『베트남전쟁』(1985), 『역설의 변증』(1987), 『역정』(1988), 『自由人, 자유인』(1990), 『인간만사 새옹지마』(1991),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스핑크스의 코』(1998), 『반세기의 신화』(1999), 『대화』(2005) 및 일본어로 번역된 평론집 『分斷民族の苦惱』(1985), 『朝鮮半島の新ミレニアム』(2000)이 있다. 편역·주해서로는 『8억인과의 대화』(1977), 『중국백서』(1982), 『10억인의 나라』(1983)가 있다.|||194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를 마치고 동대학원을 졸업해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1972부터 1974년까지 중앙대학교 등에서 강사로 지냈으며, 1974년 긴급조치 시기에 문학인사건으로 투옥되었다. 『월간독서』『한길문학』『한국문학평론』 등 여러 문예지의 편집주간으로 일했고, 1979년에서 1983년까지 ‘남민전’ 사건으로 복역하였다. 1998년 복권되어, 현재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문학평론가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 『문학과 이데올로기』, 『우리 시대의 소설 읽기』, 『한국현대문학사상사』 등을 비롯해 20여 권이 있다. 『민족의 상황과 문학사상』에서 그는 식민지시대 이래 우리 민족이 겪어온 외부적 압력과 내부적 분열의 극복이라는 민족적 과제에 우리 문학이 어떻게 대응해왔는가를 규명함으로써 민족문학의 실상과 그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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