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마이클 잭슨 따라하기가 한 때 유행이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계 언론과 그를 사랑했던 팬들의 추모열기가 온, 오프라인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마이클 잭슨은 첫 공연(1996),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포함 한국을 네 차례 방문했었다. 마이클 잭슨은 특히 한국 대중음악가수들과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마이클 잭슨 열풍이 세계를 강타할 때 이른바 디스코텍(80년대)에서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단골 배경음악이었다. 그의 현란한 음악에 빠진 많은 청소년(지금은 학부모가 된 세대)들은 그의 음악에 환호를 보냈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마이클 잭슨 음반(불법음반 포함)을 하나 쯤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특히 그의 춤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기억이 난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마이클 잭슨의 복장과 그의 춤을 흉내 낸 이른바 많은 마이클 너훈아(나훈아 짝퉁)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 춤이 방송 화면에 나오거나, 이른바 나이트쇼에서 선보일 때면 환호성이 하늘을 찌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대단 했던 것 같다. 음악뿐만 아니라 앨범과 함께 제작된 비디오영상은 방과 후 학생들이 떼 지어 관람했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마이클 잭슨은 춤과 노래가 따로 놀지 않았다. 이른바 입과 춤이 따로 노는 댄스가수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진정한 팝의 대가다운 솜씨를 보여준 가수가 마이클 잭슨이었다. 한국에서는 댄스가수의 포문을 연 박남정씨를 한국의 마이클 잭슨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른바 로봇 춤으로 불리는 박남정의 댄스는 원조를 떠나, 한 때 많은 팬들을 만들어 내었다. 어디 그뿐이랴 한국 댄스 가수 중에 마이클 잭슨의 영향을 받은 가수들은 너무 많다. 김완선, 소방차뿐만 아니라 마이클 잭슨의 춤은 개그계까지 영향을 미쳤다.
◀ 한국 댄스계의 돌풍을 일으켰던 박남정과 김완선
▲10여년 전 립싱크로 화제를 모았던 이윤석과 김진석의 허리케인 블루.
마이클 잭슨 흉내는 그당시 인기가 많았던 아이템이었다.
10여 년 전 이윤석과 김진석 “허리케인 블루”라는 이름으로 해외 유명가수의 립싱크를 불러 장안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도 있는데, 이들도 마이클잭슨의 의상과 변장으로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따라 불러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을 한국 사람들이 좋아했다고 단언할 수 없었지만, 많은 팬들을 만들어 낸 배경은 무엇일까? 동양인으로서는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마이클 잭슨의 허리유연성 때문이었을까? 잘 못 춤 따라 하다가 허리가 나갈 수도 있기 때문에. 마이클 잭슨의 노래는 단순한 댄스곡을 넘어 세계 평화의 지향과 사회성을 담은 가사 또한 좋았다. 아울러 마이클 잭슨은 음악 무대예술의 지평을 넓혔다고 볼 수 있다. 춤과 음악, 조명, 무대는 그 당시에는 상상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지금 그는 영원한 안식처로 떠났지만, 그가 남긴 음악은 세월을 넘어 이어질 것 같다. 한국의 마이클 잭슨 팬들과 마이클 잭슨을 흠모했거나 그의 음악과 몸짓을 따라했던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 때 그 사람들한국의 마이클 잭슨의 간지가 갑자기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 마이클 잭슨이 어렸을 때부터 활동했던 "잭슨 파이브"
마이클 잭슨 음악은 70년대 부터 인기가 있었으나, 한국에서는 80년대가 하이라이트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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