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의 한 부서였다가 독립한 한국경제연구원(KERI). 전경련 산하라고 불러도 큰 무리가 없을 듯. 한국경제연구원 'KERI 칼럼‘에 신중섭 교수(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글이 올라와 있다. 글 제목은 <진보교육감의 정책은 무조건 반자유주의적인가? >.
6.2 지방 선거와 함께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많이 선출되었다. 교육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서울, 경기지역을 보수진영이 자리를 내주었다. 신 교수는 진보교육감 명칭에 대해서 부연 설명 했다. <‘보수와 진보의 명칭 문제에 있어 ‘좌파’를 ‘진보’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 있지만, 통상적인 방식에 따라 진보교육감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로 한다. 언어의 의미는 그 언어가 사용되는 맥락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자유주의와 반자유의적 성향에 대해 용어 정립과 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자유는 보수, 진보는 반자유주의라는 이분법적 구분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
“일반적으로 우파는 보수, 좌파는 진보의 입장을 대변하고 보수는 자유주의, 진보는 반자유주의를 연상하지만 이런 구분이 통용되지 않는 현상이 교육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곽노현 서울특별시 교육감은 전형적인 진보교육감이고 그의 교육정책은 반자유주의적일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실제로 그의 모든 교육정책이 그런지는 의문이다. 보수교육감이 제시한 정책은 무조건 우파 자유주의적이고, 진보교육감이 제시한 교육정책은 무조건 좌파 반자유주의적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신중섭)
자유라는 말처럼 가슴을 뛰게 만드는 말이 있을까? 하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자유는 이데올로기(남과북) 대치상황에서 왜곡되었다. 북한의 1인 공산주의독재에 대한 반대급부로 수구세력에게 재활용되었다. 북한의 폐쇄성에 대한 자유와 자유경제(시장경제)가 자칭 보수가 생각하는 자유다. 한국의 군사독재와 권위정부에서 자유는 억압되었다. 그 자유는 리버럴(liberala). 즉 자유민주주적인 뜻이다. 이승만의 자유당이 자유스러운 세상을 만들었는가? 아니다. 리버럴은 19세기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봉건적 공동체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상 및 운동을 뜻한다. 미국에서는 우파, 보수주의자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통용되며, 자유주의자, 진보주의자 등으로 번역된다. 리버럴은 자유와 진보를 아우르고 있는 단어다.
신 교수는 진보교육감으로 불리는 분들이, 내세우고 있는 학업성취도 평가 선택이나 인권교육(학생인권조례)은 더 자유주의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자유는 진보적이다. 일제고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선택권을 준 것은 자유적이다. 교원 평가도 교육청이 아니라 개별학교로 넘기는 것이 더 자유적인 발상이다. 그렇다면 보수의 자유는 무엇일까? 보수는 자유적이지 않다. 자유라는 뜻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 적용할 뿐이다. 통치의 자유, 시장경제의 자유만 있다.
최장집 교수는 한국 사회도 이제 ‘자유’에 대해 새로운 접근과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의한다. 한국 사회는 보수, 진보, 좌파, 우파 개념이 비빔밥 재료처럼 뒤엉켜 있다. 용어의 정립이 필요할 때다. 좌우를 나누는 기준이 이분법적이 아니라 얼마나 진보적인가, 정책적 기준으로 평가하고 구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수구보수의 논리처럼, 빨갱이콤플렉스를 적용해서 좌와 진보를 대입시키려 한다면, 자유의 개념은 계속 희석될 수밖에 없다.
보수파 권위주의자들의 성격은 엄격한 체제순응주의, 전통적인 가치체계에의 맹종, 권의주위에 대한 충실한 복종, 사회적 도덕적 가치에 관한 단순화된 세계관으로 특징 지을 수 있다. 이러한 세계관은 선과 악, 흑과 백, 정과 사 같이 명확한 범주로 구분되어 있고,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양식화 단순 도식화 되어 있으며 한계가 그어져 있다.
가장 강력한 자는 가장 훌륭하기 때문에 명령하는 자격을 갖고, 반면에 약자는 모든 점에서 열등하기 때문에 당연히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개인의 가치는 사회적 지위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것이다. (중략)
그들은 진보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양식이나 가치 체계가 사회적 질서와 모순되는것 이라고 보고 그 모순 때문에 사회질서의 기초와 일반성이 위협받는다고 본다.
보수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질서가 위태롭지 않는 평화시기에는 보수정당을 지지하지만 일단 사회 질서가 공격을 받게 될 때나 보수권력이 패배할때에 그들의 공격적 성향은 자연히 증대되어 파시스트 운동으로 나가게 된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과 부정변증법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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