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갑 의원(민주노동당 대표)의 ‘공중부양사건’.
법원은 무죄(1차 판결)를 선고했다.
검찰은 화가 났고, 조중동은 검찰의 대변지가 되었다.
해우소(화장실)의 화장지(신문조각) 보다 못한 기사들을 쏟아낸 조중동.
조선일보는 1차 판결을 내린 판사의 이름과 얼굴까지
공개하면서까지 원색적으로 강기갑 의원 무죄판결을 비판했다.
동아와 중앙일보는 사설까지, 지면을 할애했다.
동아일보>>이상한 ‘용산 사건 장외 재판’, 황당한 ‘강기갑 무죄’
중앙일보>>판사의 ‘정치적 성향 판결’을 경계한다
폭력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폭력에 대항한 폭력은 단순하게 흑백논리로 비판할 수 없다.
오죽하면 공주부양 했겠는가?
소수당이나 시민단체에서 전개하는 저항의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비폭력 무저항, 침묵 시위 등등
하지만 민주주의 틀 안에서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다수의 횡포가 짓밟는다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듯이, 온몸으로 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강기갑 의원을 두둔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왜 강돌프가 왜 폭력에 가까운 행위를 했는지
그 배경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강기갑 의원은 사과했다.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에 대해 문제가 있다가 생각하면
검찰이 항소하면 된다. 최종 판결이 아니질 않는가?
그런데 왜 조중동은 강기갑 의원과
판결을 내린 판사에 목매달고 비판의 화살을 겨냥하는가!
검찰의 항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생쇼를 한다.
폭력은 물리적인 것도 있지만
언어 폭력이나 현실왜곡도 폭력이다.
미국의 한 인디언 인권단체에서는
백악관에 들어가서 침묵시위로 ‘나홀로 서서’ 시위를 전개했다.
아무도 기성 언론이나백악관 관계자들은 주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백악관 관리자에 의해 강제적으로 밖으로 끌려 나가면
언론은 기사화시킨다.
언론은 사회적 공기가 아니다.
공해다.
자신들의 권력과 자림 지킴을 위해
또 다른 중앙 권력에 충성하는 언론이 이미 언론이 아니다.
노골적인 포르노성 기사보다 못하다.
조중동이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고자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도 반대 나름이다.
공중부양은 언론이 만들어 낸 용어 아닌가?
지금 누가 공중부양하면서 현실을 속이고 있는지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
조중동 아이큐를 합산하면
얼마나 될까?
돌고래 수준
돌고래가 비웃을 것 같다.
황당한 조중동.
검찰과 정부의 대변지 조중동.
아예 청와대 권력까지 접수해라!
이명박 정부보다 무서운 것은
재벌이며
족벌언론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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