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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밥

‘평생 학생’이자 스승으로 기억될 김대중

by 밥이야기 2009.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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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독서 중인 김대중 대통령과 기름종이에 못으로 쓴 편지(사진출처:김대중 사이버기념관)

 

몇 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에게 하나의 제안을 드리기 위해 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글로 만나것이지요. 제안의 내용은 노벨 평화상 수상 상금의 일부와 앞으로 쓰실 자서전의 수익금을 ‘ 아시아의 망명 민주 인사’를 위한 기금으로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제안서를 들고 가신 분은 시민활동가이자, 인권 변호사였던 박원순. 물론 정중하게 거절당했습니다. 용감했지요. 원래 앵벌이는 용감합니다. 제안을 하게 된 배경은 김대중 대통령도 두 차례의 망명생활을 하셨고, 아시아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신 상징성 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세계 각국은 민주화를 위한 여정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또한 민주인사들은 자국을 떠나 여러 나라에서 망명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감옥에 있을 때나, 망명 생활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때 지난 이야기지만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나오지도 않은 자서전을 팔아 좋은 일에 쓰자고 제안했던 조금 무모했던 제안. 오늘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제안의 내용이 아닙니다. 평생 책을 좋아했고, 학습했던 책벌레 김대중 이야기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은 책과 학습입니다. 흔히 김대중 대통령을 한국의 만델라, 한국의 아키노라고 이야기 합니다. 정치적 역정이나 지향은 닮아 있을 수 있겠지만 오히려 평생학생 이었던 중국의 문학가이자 학자였던 왕멍과 지셴린이 떠오릅니다.




▲ 국내에 출판된 왕멍이 쓴 '나는 학생이다'와 지셴린이 쓴 '다 지나간다'


 
네 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명된 대문호인 중국이 낳은 지성 왕멍. 그의 삶도 인동초처럼 험난했습니다. 14살에 중국 혁명에 뛰어들어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이던 왕먼. 1958년 문화혁명 당시 우파로 낙인찍혀 신장 위구르 지역으로 16년간 추방됩니다. 왕멍은 그곳 농부들과 들일을 하며 위구르어와 위구르인의 세계를 배우게 됩니다. 79년 복권될 때까지 16년간 그는 기다림의 시간속에서, 왕멍은 그의 저서 제목처럼 ‘나는 학생이다’라는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고 생각을 다듬어 냅니다. 마흔 여섯의 나이에 영어를 배운 왕멍. 영어라고는 굿바이와 탱큐밖에 몰랐던 왕멍이었지만, 위그르에서 생활할 때 위그르어를 배웠듯이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는 생각으로 하루에 영어 단어 30개씩을 외우면, 영어를 습득하기 시작합니다. 언어을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이야기 한 왕멍. 한 나라의 문화와 사상을 배우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언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시험과 출세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삶의 가치와 지향을 위해 영어를 공부 한 것입니다. 위그로어로 위그르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배웠듯이. 왕멍은 말합니다. “ 사람들이 고개를 흔드는 역경逆境을 인생의 시험이요, 도전이라고 보았고, 상대적으로 순경順境을 오히려 인생의 함정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학습은 ‘나의 뼈와 살’이며, 생활은 가장 좋은 ‘사전’이요 ‘교과서’라고 그 신념을 밝혔다. 또한 ‘인생은 연소’라고 명쾌하게 선언하면서, 삶의 목적은 무위가 아니라 유의요, 기다림이 아니라 능동적인 창조라고 했다.”

또 한사람은 바로 중국인들로부터 나라의 스승이라는 불리는 지셴린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처럼 그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왕멍처럼 그도 문화대혁명 때는 지식인에 대한 핍박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난 날 힘들게 한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더라도 그들보다 더 잘 행동했을 거라고 장담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라며 백노장과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평생 학습을 게을리 하지 않고, 수 많은 생각을 담은 저서(500 여권)들을 집필합니다. 100세가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셴린은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 마치 사람이 60세만 넘으면 사회 진보의 걸림돌이 되는 것처럼 말할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고령화 시대의 책임을 우리에게 떠 넘기고 괄시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김대중 대통령이 지셴린처럼 더 사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뿌리를 더 강하게 심어 내었을 것인데.

왕멍과 지셴린. 그리고 김대중. 세 분은 다르지만 같기도 합니다. 평생 책을 놓지 않았다는 것. 고난의 세월 속에서도 끊임없이 보고 느끼고, 기록했다는 것.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평화상보다 어쩌면 애서가상을 더 좋아했을 수도 있습니다. 평생 모으고(3만여권의 책), 읽었던 책, 6년간의 감옥생활동안 책은 김대중을 있게한 지혜의 창고였습니다. 읽는데서 그치지 않고 쓰고 고치고 다듬은 그의 글과 사상. 그가 쓴 40여권의 책. 더 사셨다면 더 많은 이야기와 가르침을 주었을 터인데, 그의 죽음이 안타갑기만 합니다.

 러시아 대문호의 소설과 박경리의 토지를 아껴 읽었던 김대중. 평생 학생이었던 김대중. 이제 영원한 스승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책과 글은 평생을 살아 갈 것입니다.

"독서는 정독하되, 자기 나름의 판단을 하는 사색이 꼭 필요하다. 그럴 때만이 저자 또는 선인들의 생각을 넓고 깊게 수용할 수 있다." (김대중 어록). 사색을 넘어 행동하는 양심으로 실천했던 김대중. 이제 당신을 보내 드려야 할 때가 나가오고 있습니다. 잘가십시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가슴이 슬퍼가셨지만, 웃으며 가십시오.




오늘 배포될 병상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쓴 마지막 일기 "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제목을 '책과 사색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로 고치고 싶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책세상과 만나시길.......................



* 왕멍과 지셴린 정보(아래 더보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