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사진 출처: vimeo.com
19세기와 20세기를 교차하면서 살았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프랑스/1871~1922). ‘시간’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는 늘 그 이름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시간 속에서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이름으로 대작을 남겼다. 중학 시절,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시간’을 무한대로 상상할 수 있었다.
책의 역사를 살펴보면 ‘시간’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책들이 출판되었다. 특히 SF소설은 소설자체가 '시간'이라는 자체가 상징으로 심어졌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유동되고 있다. 물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현실이 하루 사이에 과거·현재·미래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바쁜 일상에서 잘 인식하지는 않는다. 어제가 오늘 같기도 하다.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은 과거가 현재를 잇는 미래의 가교가 되기도 한다. 지속가능성은 현실로 보인다. 현실학이 미래학이 될 수도 있다.
) -->
오늘은 ‘시간’이라는 주제로 쓰인 2개의(두 편의) 글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하나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워싱턴포스트 기자 브릿지 슐트가 펴낸 ‘타임 퓨어(TIME POOR)’ 이야기와 한 작가가 ‘공유야 놀자! - 공유도시와 서울의 미래’ 이름으로 발행된(참여 전문가들이 쓴 소제목) ‘누구나 가능한 시간공유, 타임뱅킹'을 소개했다.
브릿지 슐트는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도 있다. 왜냐면 자기 자신도 시간에 쫓겨 '일과 가사'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시간이 부족해서 정신없고, 또 한사람은 직업이 없어서 시간이 너무 많아서 놀고 있다. 두 사람 다 말을 하지 않지만 속으로 힘들것이다. 스트레스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일이 많아 시간에 쫓겨 붕괴되는 삶과 빈곤의 시간속에 정지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가치로 인정해주고 공유뱅킹을 통해 시간을 임금의 가치로 인정해주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일이 너무 많아서 과로로 쓰러지는 것이 좋은가? 일자리가 없어 고통이 산적한다면 스스로 가난의 인생이 죽음으로 밀어낼 수도 있다. 이제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출세, 성공 가시적인 현상을 넘어서서 저마다 다름(차이)을 찾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하루 4시간만 집중해서 일을 잘하는 사람도 있다. 하루 종일 일이 잘되는가? 물론 블루와 화이트 직업, 분야에 따라 생각도 다를 수는 있지만, 균형의 개념도 세워야 한다. 시간의 밥이기도 하다. 밥이 하늘이지 않는가? 아직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지식인들의 권위자는 무개념으로 살고 있어 보인다.
) -->
2015.8.17./유창주(밥이야기/네가너의밥이다)
*말도 되지 않는 글 초초고?입니다. 양해바랍니다.
'사회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부대봉사단, 일본을 용서하자? (0) | 2016.01.05 |
---|---|
우리는 왜 거짓말을 하는가? (0) | 2015.08.26 |
현장과 이론이 만나는 연구소, 생태지평 후원의 밤 (0) | 2011.11.16 |
오세훈 "애가 탄다" vs. "애들이 웃는다" (0) | 2011.08.24 |
무상급식 '투표참가운동본부', " 딱 걸렸다 " (0) | 2011.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