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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조오련의 무한도전, 북한 대동강 완주를 보고 싶었는데..

by 밥이야기 2009.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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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의 물개를 넘어, 도전정신으로 제 2의 인생을 이어갔던 조오련
  


  “북한에서 대동강 종단을 허용해준다면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두 아들(성웅,성모)과 함께 울릉도와 독도를 33번 오가는 대장정을 성공한 뒤 조오련이 남긴 말입니다,


 한국 수영계의 큰 별이 떨어졌습니다. 조오련은 아시아의 물개라는 말보다 “무한도전의 사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아시아 게임 2관왕, 그가 거머쥔 많은 금메달보다 값진 것은 바로 도전정신이었습니다. 영국 산악계에서 가장 우수한 등반가로 손꼽히는 인물 말로리는 "산이 거기 있어 산을 오른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조오련은 “물이 있어 물살을 가른” 도전가로서 제 2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비록 금메달은 없었지만 그가 이룬 대한해협 횡단, 도버해협횡단, 한강 600리 종주, 독도 33바퀴 경주는 그 어떤 1등보다도 값진 것이었습니다.

 
땅 끝 해남에서 태어나, 다시 그 끝에서 새로운 꿈을 열고자 했던 조오련. 조오련의 사망 소식을 들으면서 MBC 무한도전이 아니라, 조오련의 지난 무한도전이 시나브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조오련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다가 2007년 4월경에 ‘손숙의 아주 특별한 아침’에 출연했던 조오련의 인터뷰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해남으로 내려간 배경과 북한의 대동강도 완주하고 싶은 계획을 밝힌 인터뷰 글을 읽어보니 조오련의 진면목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조오련이 남긴 이야기를 다시 나누어 볼까 합니다.
 

손숙: 해남에서의 생활이 외롭지 않으세요?

조오련(=): 외롭기로 따지면 물속이 더 외롭지요. 물속에서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으면서 열 몇 시간씩을 하는데 계곡에서는 새소리도 있고 물소리도 있고 소나무 사이로 흘러가는 바람소리도 있잖아요.

▶ 해남이면 어렸을 적부터 바닷가라서 수영을 하셨겠어요.

=사람들이 해남이라고 하면 전부 바닷가에서 수영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해남이 굉장히 큽니다. 저희 집에서 바다에 나가려면 20리를 가야 했어요. 저는 실개천에서 더우면 물장구 치면서 놀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중1 때 제주도에서 수영대회 1등 한 선수를 보고 저보다 못한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잊고 지내다가 중3이 되니 여유로운 친구들은 목포나 광주로 유학을 가는데 저만 형편이 넉넉지 못해서 못 가게 생긴 거예요. 도시는 동경하고 나가고는 싶어서 제일 자신 있는 수영으로 전국 3위만 하면 부모님 도움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너무 잘해서 선수촌까지 들어갔어요. (웃음)

68년인 18살에 서울로 올라와서 수영을 시작했으니 너무 늦었죠. 그때는 해남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올라와서 69년에 시합을 나가야 하는데 학교에 적이 없으니까 수영연맹에서 대학일반부로 출전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400M와 1,500M에서 1등을 하고 양정고등학교로 스카우트되었지요. 서울에 온 지 1년 만에 서울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부모님 앞에 나타난 것이 지금 생각해도 제일 뿌듯했어요.

▶ 물에만 들어가시면 1등이신데 연습을 어떻게 하신 거예요?

=종로 근처에서 간판집 점원으로 일하면서 YMCA에서 연습했어요. 간판집에서 잡심부름과 청소를 하면서 양해를 구해 YMCA수영장을 다녔지요. 강습비 내느라 고생도 많이 했고 회원증에 20일을 연장하는 위조도 해봤죠. 먹지를 넣고 잘 썼는데 나중에 들켜서 퇴출당할 뻔했는데 시골에서 농사짓다가 와서 형편이 안 되서 그랬다고 진지하게 용서를 구하니까 적발하신 분이 용서를 해주시더라고요.

▶ 아시아 수영은 일본이 앞서가고 있지요?

=송곳니만 잘 발달됐다고 음식을 잘 씹는 것이 아니라 이가 골고루 발달 되어야 음식을 잘 섭취할 수 있듯이 400M와 1,500M를 비롯해서 접영, 평영, 배영이 골고루 발달해야 건강한 수영계가 되리라 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일본은 수영등록선수가 10만 명인데, 우리나라는 3,000명이에요. 비교가 안 되죠. 일본은 선수층이 두터워서 은퇴를 해도 바로 후배가 이어져 나오는데 우리는 저나 최윤희 씨나 지상준 씨의 뒤가 이어지지 않아요.

정신력이 중요한 것 같은데 박태환 선수는 만나보셨나요?

=TV로만 봤어요. 너무 자랑스럽고 부럽기도 한데 이번에 세계선수권 대회로 비단을 얻었다면 금상첨화로 비단에 수를 놓듯 북경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따주었으면 좋겠어요. 박태환 선수는 물그릇에 든 물인데 그릇을 엎지르지 않고 출렁거리지 않게 행정력과 지도력을 비롯해서 모든 주변 환경들이 잘 이루어져야 할 텐데 걱정되더라고요. 나이가 어리다 보니 심적 동요와 부담이 클 수도 있고 너무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조오련 선수도 그런 경험 있으시죠? 금메달 후에 이 방송, 저 방송에서 인터뷰하자고 하고...

=저는 도망가 버렸어요. (웃음) 그때는 언어구사도 그렇고 촌놈이라 어디 나가면 땀을 뻘뻘 흘리고 그랬거든요.

▶부인이 돌아가신지 얼마나 되셨죠?

=7년째 돼갑니다. 제가 50세였던 2001년에 심장마비로 제 앞에서 쓰러졌어요. 구급조치를 바로 했는데도 안 되더라고요. 남자로 태어나 한 여자에게 사랑을 다 주지 못한 안타까움이 항시 자리 잡고 있고 그것이 제일 미안해요. 지금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잘 정리해서 청초하게 살아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 물속에 들어가면 무슨 생각을 하세요?

=될 수 있으면 모든 것을 잊으려고 합니다. 물은 힘으로 이기려고 하면 절대로 친구로 받아주지 않습니다. 습자지에 물 묻혀놓은 것처럼 완전히 달라붙을 때 물은 친구로 받아줍니다.

▶ 인생도 힘을 빼야 할 것 같은데 인생도 수영과 닮았나요?

=제가 인생을 이야기하기에는 나이가 주제넘습니다만 수영이나 음악, 미술, 글 쓰는 사람이나 궁극적으로 바라고 목표로 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아요.


*자료출처>>노컷뉴스




조오련은 바닷가에서 태어나 어머님의 품 같은 끝 모를 바다 속으로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 싸이월드의 조오련 미니홈피에 남긴 조오련의 글들을 보니 고인의 숨결과 마음결이 느껴집니다.






울릉도와 독도를 오가는 횡단 도전을 앞두고 올린 글입니다.

조오련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팬들의 글들이(아래) 계속 이어지고 있네요



 

조오련이 대동강을 건넜다면,
그의 도전정신으로 스포츠를 통한 남북관계가 막힘 없는 물처럼 남북을 오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봅니다.

헝그리 정신을 넘어선 무한도전의 사나이 조오련. 척박한 한국 수영 환경을 뚫고 맥박질을 이어갔던 조오련
그의 정신을 후배들이 살려 이어가길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