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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바보 전태일은 왜, 아름다운 청년일까?

by 밥이야기 2010.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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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3일. 꽃다운 나이에 청년 전태일은 분신했다. 내일이면 40 년이다. 어제 박광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다시 보았다. 아름다운 전태일. ‘아름답다’는 무엇인가? 아름다움은 사람이 천차만별이듯,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정이나 대상 또한 다르다.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인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속살인가.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고 분신자살했을 때 나이는 22살. 지금 살았다면 환갑을 넘긴 나이다. 40년이면 강산이 크게 몇 번을 바뀔 세월이다. 4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청년 전태일이 분신을 앞두고 편지(아래 상자글)를 보낸 박정희도 측근의 권총 세례를 받아 사망했고, 5.18 민중항쟁, 6월 민주항쟁을 거치면서 한국 민주주의 운동은 큰 변화를 일구어 내었다. 민주, 참여 정부도 탄생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자들은 과연 안녕한가? 아직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전태일은 한국 현대 민중, 노동 운동사의 상징이다. 많은 이들이 전태일 열사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웠던 삶의 궤적을 따라 길을 따라 걸었다. 한국 노동, 민주 운동사에 전태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전태일을 신화나 영웅으로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 그의 삶은 아름답지 않았다. 척박한 노동환경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 또한 아름답지 않다. 그 고통을 헤아릴 수 없는 불 속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청년 전태일은 아름다운가?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이익과 처세를 위해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보회(1968)를 만들어 척박한 노동자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기에 전태일은 열사를 넘어 우리시대의 의인이기도 하다.



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혁명 후 오늘날까지 저들은 각하께서 이루신 모든 실제를 높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경할 겁니다.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알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여 은미 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 한번 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드릴 것입니다.

 

저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 208번지 2통 5반에 거주하는 22살 된 청년입니다. 직업은 의류계통의 재단사로서 5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직장은 시내 동대문구 평화시장으로써 의류전문 계통으로썬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것으로 종업원은 2만 여명이 됩니다. 큰 맘모스 건물 4동에 분류되어 작업을 합니다. 그러나 기업주가 여러분인 것이 문제입니다만 한 공장에 평균 30여명은 됩니다. 근로기준법에 해당이 되는 기업체임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더구나 2만 여명을 넘는 종업원의 90%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입니다. 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써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미싱사의 노동이라면 모든 노동 중에서 제일 힘든(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노동으로 여성들은 견뎌내지 못합니다. 또한 2만 여명 중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써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이들은 회복할 수 없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인 것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전부가 다 영세민의 자녀들로써 굶주림과 어려운 현실을 이기려고 하루에 90원 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으며 하루 16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사회는 이 착하고 깨끗한 동심에게 너무나 모질고 메마른 면만을 보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각하께 간구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착하디 착하고 깨끗한 동심들을 좀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오. 근로기준법에선 동심들의 보호를 성문화하였지만 왜 지키지를 못합니까? 발전도상국에 있는 국가들의 공통된 형태이겠지만 이 동심들이 자라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근로기준법이란 우리나라의 법인 것을 잘 압니다. 우리들의 현실에 적당하게 만든 것이 곧 우리 법입니다. 잘 맞지 않을 때에는 맞게 입히려고 노력을 하여야 옳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 기업주들은 어떠합니까? 마치 무슨 사치한 사치품인양, 종업원들에겐 가까이 하여서는 안 된다는 식입니다.

 

저는 피끓는 청년으로써 이런 현실에 종사하는 재단사로써 도저히 참혹한 현실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하여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시청 내에 있는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구두로써 감독을 요구했습니다. 노동청에서 실태조사도 왔었습니다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1개월에 첫 주와 삼 주 2일을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썬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 버립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6년 전후의 경력자로써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한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응당 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 시에는 필림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 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백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오. 최소한 당사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정도로 만족할 순진한 동심들입니다.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 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 아픈 곳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

1일 10시간 - 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

* 출처: 전태일 기념사업회


 

전태일은 많은 사람을 변화시켰다. 노동, 민주, 인권 운동에 뛰어든 사람들에게는 스승이었으면, 풀어내어야 할 큰 짐이었다. 전태일 어머님이신 이소선 여사도 아들의 뒤를 이어 한국 민주주의 운동을 위해 헌신했다. 길 위에서 만인을 위한 만인의 외침에 언제나 함께 했다. 전태일의 여동생(전순옥)은 동대문역 근처에서 사회적 기업인 ‘참 신나는 옷’을 통해 전태일의 꿈을 담은 희망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인권 변호사였던 조정래는 전태일 평전을 썼고, 많은 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했다. 전태일 뿐만 아니라 다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이름이 담긴 마지막 자막(End Credits). 전태일 다리에 아로 새겨진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름들...

 

  
때론 기뻤고, 때론 절망했던 흔적들이 사라졌지만, 전태일이 일했던 청계천 길을 따라 걸어본다. 40년 전, 평화시장의 다락방에서 새우잠을 자며 때론 잠을 쫓는 약까지 먹어가며, 하루 14~16시간씩 좀 더 나은 삶과 기술자가 되고자 하는 희망 하나로 일을 했던 사람들. 내일은 전태일이 추모 40주기. G20 정상회의로 한국은 비정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전태일 추모제를 앞두고, 서울시설공단은 서울 청계천6가 전태일 다리(버들다리)에 전시된 만평 28점을 수거했다. 40년이 지났건만, 많은 것들이 바뀌건 같지만 요즘 한국의 현실은 7,80년대 시대로 다시 회귀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바깥풍경은 높은 빌딩에 자동차에 요란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전태일 바보가 외쳤던 소외계층을 위한 삶의 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가난하다. 하지만 물질적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마음의 가난. 차별과 노동탄압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내일은 전태일을 만나자. 전태일 다리에서도 좋고, 영화(아름다운청년 전태일)에서도 좋고, 평전도 좋다. 한국에는 여전히 더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듯, 더 많은 청년 전태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신의 시대를 넘어, 마음의 불을 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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