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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시골의사 박경철과 조정래'경제민주화'가 만날때?

by 밥이야기 2010.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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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시골의사 박경철씨 트위터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나라당 감세 논란을 지켜보면서 답답해 한 모습이 트위터 글에서 느껴집니다. 박경철씨가 최근 쓴 트윗(트위터 글/붉은톤 표시글)을 살펴보면서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잠시 나누어볼까 합니다.

 

"부자가 빈자에게 빵을 나눠주면 성자라 하고, 그에게 다가가 왜 이렇게 되었느냐 물으면, 좌빨이라 의심하는 편견"... 이걸 깨야하는데... 그점에서 한나라당 감세철회 논란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는데 안타깝네요 .. “ ”어설픈 이념화의 망령이 곳곳에서 출몰하는군요 .. 안타깝습니다 ..“

 

부자감세는 이념하고는 거리가 멀지요. 자본주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입니다. 균형 잡힌 자본주의, 공정한 자본주의는 사실 현실세계에서 실현시키기 힘들지요. 왜냐하면 사회를 움직이는 세력이 자본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면 좋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편협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부자 감세가 공약이라고 철회할 수 없다는 대통령 특별경제보좌관 강만수의 발언은 현 정부의 경제관이 그대로 담겨있다고 보면 됩니다.

 

“버핏의 기부처럼 특정개인의 커다란 선의에는 좌우 모두 기립박수를 치면서도, 세제처럼 제도로서 의무를 같이 지자는 부분에선 이념논쟁하는 모습은, 일종의 사회적위선일 수 있죠. 개인의 선의에만 기대하기보다 구조의변화가 더 중요한 문제일텐데요 .. ”

 

개인의 선의는 예측하거나 강요할 수 없는 개인의 문제입니다. 남이 호주머니를 비워 남을 돕는 행위는 좋아하지만,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문제지요. 제도적 보완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부자감세를 이념의 잣대로 말하는 것 자체가 위선입니다.

 

“부자가 훔치는 빵과 빈자가 훔친 빵의 죄의 무게는 전자가 더 무겁지만, 현실에서는 전자의 경우 과실로 치부하고, 후자는 준엄한 심판을 받게되죠... 공정이나 정의와 같은 가치판단.. 참 간단치 않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 ”.중국을 다스린건 사실상 황제가 아닌 '십상시'들이었죠. 환관들이 인의 장막을 치고 황제의 눈과 귀를 가리며 전횡을 일삼았던 셈인데, 황제는 자신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고 믿었을테죠. 오늘 어떤 기업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구호를 걸고 있지만 절대 평등하지 않지요. 미국발 금융위기 때 모기지론으로 금융파생상품으로 거리로 나간 미국 중산층과 서민층은 죽어 날 판인데, 긴급지원으로 회생한 금융 자본가들은 기업가들은 어떠했는가요. 보너스 잔치를 벌였습니다. 대통령보다 자본권력이 힘이 센 세상입니다. 대통령이야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투표를 통해 갈아 치울 수 있지만, 황제 같은 2,3세 경영자들은 부를 세습받아서, 투표를 무시하고 백성 위로 뚝 떨어진 하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오늘 하루 고민한 화두는 '분노'였습니다. 분노에는 내적분노와 외적분노가 있겠죠. 인간사에 분노가 없는 승화가 과연 있을까요?. 또 인간의 편에 선 사람에게 정녕 분노가 없을까요?. 만약 분노가 없다면 지금 그는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일까요?.. ”

 
모든 비인간적인 것 앞에서 저항하고 분노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허수아비에 불과할 뿐이지요.

 

자본의 세습은 소위 똥돼지 논쟁에서도 예외가 되죠. 한줌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주식회사를 사유화하고, 삼대 세습을 이어가더라도, 소위 '시장원리'의 맥락에서 용인되니까요. 자본이 이념까지 논하기 시작하면 이제 '빅 파더'가 탄생하는 건가요..”

 

시티은행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금권사회라고 평가를 내리고 있지요. 1% 상위 계층을 위해 95%가 희생하는 사회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세습권력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자본의 세습입니다. 스웨덴의 경우에는 기업 대물림이 있지만 전혀 다르지요. 세금을 제대로 내야 하니까요. 한국의 기업 대물림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마트 피자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파는 것을 뭐라 하겠습니까. 사 먹는 것을 뭐라 하겠습니까. 피자에 담긴 진실을 보아야지요. 왜 이마트가 피자를 팔아야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마트가 피자를 파는 단순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떡볶이를 판매하는 노점상이나 분식집이 이마트에서 떡볶이를 판매해서 한꺼번에 나자파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마트에 가면 박리다매하면 싸다는 것, 이마트에 가면 이쑤시개부터 다 살 수 있다는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거지요. 철저한 상술만 있는 겁니다. 경제민주화. 참 어색하면서도 균형적이지 않은 합성어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특히나 한국같은 천민자본주의에서는 경제민주화가 필요합니다. 요즘 <허수아비춤>을 쓴 조정래씨도 책 서문에 경제민주화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 정치에만 '민주화'가 필요한 것인가? 아니다. 경제에도 '민주화'가 필요하다. '경제민주화'? '정치민주화'에 비해 낯선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말뜻은 어렵지 않다. 이 땅의 기업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투명경영을 하고, 그에 따른 세금을 양심적으로 내고, 그리하여 소비자로서 줄기차게 기업들을 키워 온 우리 모두에게 그 혜택이 고루 퍼지고, 또한 튼튼한 복지사회가 구축되어 우리나라가 사람이 진정 답게 사는 세상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경제 민주화'다.


한국의 대부분 대기업은 투명하고 담쌓고 살아왔습니다. 조정래씨 지적처럼 이제 경제민주화가 필요합니다. 오래 전에 참여연대에서 경제민주화운동을 벌였지요. 어쩌면 그 때보다 이제 더 그 운동을 되살려 낼 때입니다. 소액주주운동을 넘어선 경제민주화운동의 불씨를 살려낼 때입니다.



산업, 상업, 농업, 광업 등의 부문에서 유익하고 알맞은 보수의 일자리를 가질 권리.
적절한 음식과 의복과 유흥을 누리기에 충분한 소득을 얻을 권리.
모든 농민이 스스로 작물을 기르고 팔아 그와 가족이 걸맞은 생활을 영위할 권리.
모든 사업자가 규모와 장소에 관계없이 불공정 경쟁과 독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거래할 권리.
모든 가정이 걸맞은 주거를 누릴 권리.
적절한 의료보호와 좋은 건강을 얻고 즐길 기회를 누릴 권리.
노령, 질병, 사고, 실업 등의 경제적 공포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을 권리,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

이 모든 권리가 뜻하는 것은 안전입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우리는 이들 권리의 이행을 통하여 인류 행복과 공영의 새로운 목표에 정진해야 합니다. - 루스벨트 연두교서 연설 중에서 / 실현되지 못한 선언이지만, 되살려 내어야 할 지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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