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이 연출한 '하하하' 중의 술자리 장면
늦은 감이 있지만, 홍상수 감독이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받았습니다. 수상작은 ‘하하하’. 홍상수 감독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영화계가 계속 주목해왔지요.
연출한 영화마다 대부분 유럽 주요 영화제에 초청되었으니까요. 한국 사람들보다 유럽사람들이 홍상수 감독 영화를 더 좋아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홍상수 감독은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장 뤼크 고다르'로 불리지요. 프랑스가 낳은 거장 고다르는 1960년 자기 멋대로 만든 “내 멋대로 해라’를 발표해서 누벨바그(전위영화)의 선봉장이 되었지요. 고다르의 작품에는 기존 연출방식을 파괴한 즉흥적 표현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추구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리얼리티 또한 즉흥적이지요. 여기서 즉흥적이라는 말은 허구지만 현실의 언어를 그대로 담아내는 것을 뜻합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이야기를 하다보면 소설 1권이 나올 듯해서 각설하고, 홍상수 감독 영화 속 술자리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술과 술자리, 술집이 빠지지 않습니다. 인간사가 그렇지요. 술 제조회사는 기쁘겠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그리 기쁘지 않습니다. 누구나 술자리에서 한번쯤 대화를 한 것 같고, 토한 것 같고, 싸운 것 같은 경험을 전달해 주니까요. 홍상수식 데자뷰.
프랑스에서 열공(연구) 중인 정수복이 쓴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에는 홍상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얘기가 사례로 나온다. 600페이지에 이르는 예사롭지 않은 책이지요. 정수복은 한국인의 근본적 문법 중에 하나인 ‘감정 우선주의’를 예로 들며 한국인의 ‘놀이와 술판’에 대해 얘기합니다.
‘정이 많은 한국인들은 혼자 있기보다는 함께 있기를 좋아하고 함께 모이면 조용히 대화를 즐기기보다는 놀이와 술판을 즐긴다. 상다리가 휘도록 음식을 차려놓고 술을 원수처럼 퍼마시다가 고래고래 노래하고 춤을 추며 난장판으로 놀아야 직성이 풀린다...(중략). 한국인은 술에 의해 망아적 상태에 이르고 그 상태에 이르고 그 상태에서 너나 없는 깊은 인간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2차,3차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셔서 나는 없어지고 술만 남아야 그 동안 쌓였던 감정이 해소되고 끈끈한 정이 생기고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정수복,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118쪽)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술자리 장면을 출연 배우들한테한 수 가르쳐 주고 있는 홍상수감독(맨 오른쪽 사진).
필자도 술 이력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이 글을 읽고 나니 ‘왠지 낯이 뜨거워집니다..’그럼 이제부터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술자리’를 다시 엿보는 시간을 가져보지요. 영화판에서 일하는 선배에게 들은 얘기가 기억이 납니다. “홍상수 감독하고 술을 마시면서 가십거리로 술안주로 올렸던 얘기들은 영화에 그대로 녹아난다고.” 많은 사람들이 당했지요. 홍상수 감독하고 술자리 할 때 주의 하십시오. 영화 대본에 그대로 들어가니까요. “어 저 말 내가 한 말인데”
구효서의 소설 ‘낯선 여름’을 원작으로‘‘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연출.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일상의 커튼을 열어버린 홍상수의 장편영화 데뷔작. 일상의 언어와 풍경이 얼마 전에 일어난 현실같이 재현된 영화를 보고나면 어쩔 때는 공포영화도 아닌데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영화 속 장면은 스멀스멀 관객의 머리를 비집고 들어와 잊힌 기억을 들추어 내지요. 영화는 컬러인데 무덤덤한 흑백영화와 색 바랜 사진을 보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듭니다.
“엇, 이거 내 얘기 아니야” 홍상수 영화로 들어가 ‘술독에 빠지다 보면’ 어느 순간 영화 속 인물들은 내가되고 우리가 됩니다. 술집에서 싸움을 하고, 넋두리를 풀어내고, 여자를 만나고, 술에 취해 허우적거리다 보면 영화는 끝나버리고. ‘강원도의 힘’은 술을 마시며 비디오로 보아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렇다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볼 자신은 없고. 술은 강원도 힘에서 다양한 상징으로 등장하지요. 교수가 되기 위해 ‘명품 술’을 헌납하고, 술을 마시면서 기억이 교차하고 분열되고... 술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영화인 셈입니다. '오! 수정’에 등장하는 종로 막걸리 집 풍경은 술질 벽에 갈겨진 낙서의 흔적처럼 실타래처럼 꿈과 추억이 얽혀있는 장소. ‘오! 수정’을 기억하면 막걸리 집을 찾은 사람들도 꽤 있을 것 같다. 필자도 30분을 기다리는 인내를 발휘하며 술을 마셨으니.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술판을 중심으로 한 한국인의 감정우선주의를 스크린 위에 객관화시켜 냅니다.<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강원도의 힘>을 거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해변의 여인>에 이르기까지 홍상수영화에는 술을 마시는 장면이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이번에 칸영화제 상을 받은 ‘하하하’도 마찬가지.
“홍상수 영화에는 한국인의 술을 통한 정서적 관계의 형성과 비합리적 의사 소통방식이 여실히 표현되고 있다. 그의 영화를 주의 깊게 분석해보면 술자리에서 분출하는 한국인의 감성폭발 현상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술에 취해 너나없이 하나가 되는 현상은 어떻게 보면 무당이 무아경상태에 들어가 신과 깊은 관계를 맺고 하나 되는 상태와 유사하다.’(정수복,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118쪽)”
어제도 오늘도 수많은 술판이 벌어집니다. 내일도. 싸움이 일어나고 화해가 이루어지고 사랑이 떠나고 오고 슬픔과 행복이 교차하고 음모와 부패의 끈이 이어지고 끊겨지는...
술자리에서 모든 것들이 소통된다면 좋을 터인데, 현기증 나는 현실의 해는 숨지 않고 뜨겁게 떠오지요. ‘술자리에서 얘기 한 것은 말짱 도루묵’ 하면서 도루묵은 계속됩니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지난 술자리의 실수를 더듬어 내기에는 하루는 너무 빨리빨리를 재촉합니다.
감정우선주의도 좋지만 ‘깨어 있을 때’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대화가 필요 할 때입니다. 사는 공이 되고, 공은 사가되는‘공과 사’를 폭탄주처럼 썩어버리는 술자리문화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겠지요. 특히 <검찰과 스폰서>에 출연하신 검사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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