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신비주의2 서태지와 박근혜의 신비주의를 말하다 어제 치뤄진 4.27 재보선(재보궐)에서 한나라당이 완패했다. 아직은 명분뿐인 야권연대(반이명박연대)가 구태의연한 여당의 색깔론을 눌렀다. 야권 입장에서는 절반의 승리(미완의 승리)고 여당은 딱히 내세울 이름이 없다. 청와대는 부인하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갈지자 레임덕 발목을 더 잡을 것 같다. 꼬마 선거라고 폄하하고 싶은 생각뿐이겠지만, 간단치 않다. 친이명박계든, 친박근혜계든 지금 한나라당 체제로써는 앞길이 너무 불투명하다. 이번 선거를 외면한 박근혜 의원 입장에서야, 이후 당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기회주의자라는 오명을 벗어내기 힘들 것이다. 박근혜 의원의 소속당은 딴나라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꼬마 선거라해도, 그 영향력을 감안했다면 전력.. 2011. 4. 28. 이지아 이혼사유와 서태지 신비주의 로 혜성같이 대중앞에 나타난 서태지와 아이들. 그들이 처음으로 무대에 선 동영상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서태지(본명: 정현철)는 17살 때 그룹 시나위(신대철, 김종서 등) 멤버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문화 대통령'이라는 이름까지 거머쥔 서태지. 4집 음반 발표를 끝으로 1996년 그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고, 미국으로 떠났다. 서태지는 대중 문화의 아이콘이었다. 자유였다. 그가 남긴 노래는 숱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언급되고, 인용되었다. 서태지를 빼놓고 대중문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팥없는 찐빵이었다. d이후 서태지는 아이돌 문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고, 대중음악 마케팅 분야(연예매니지먼트, 기획 등)에 영향을 미쳤다. 가수도 개인을 넘어 기업화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주기도 했.. 2011. 4. 2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