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메인에 뜬 조선일보< '조두순사건 현장가보고 경악>
조선일보 박정훈 사회정책부장이 '조두순 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에 다녀왔다. 그가 쓴 글이 네이버 조선일보 메인 기사에 떴다(조선일보에서 선정). 기사 원제목은 “ 나영이 사건 현장에 가보니”다. 네이버에 띄운 같은 기사의 제목은 <'조두순 사건' 현장 가보고 경악>이다. 박정훈 기자의 글을 읽어보면 경악할 만한 글이 절대 아니다. 문장에 ’경악‘이라는 단어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왜 경악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시키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이미 조두순사건에 경악했고 법원의 판결에 경악했다. 박정훈 기자의 쓴 글 중에 고갱이 몇 문장을 뽑아보자. 꼭 읽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1
아무리 짐승 같은 성범죄자라지만 동이 튼 아침 시각에, 그것도 유흥가 우범지대가 아닌 학교 옆에서 끔찍한 성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는 것이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2
그런 취약지대를 초등학생들이 매일 등하교 때 오가고 있었지만 아무런 방범 대책이 없었다. 나영이를 만신창이로 만든 그 악몽의 공간을 바라보며 나는 때늦은 가정을 해보았다. 만약 이곳에 방범초소가 있었다면? 학부모회나 주민들이 등하굣길 순찰을 다녔다면? 그 흔한 CCTV라도 몇 대 표시 나게 달아 놓았다면?
3
나영이가 다니는 A초등학교 아이들 집은 두 부류로 갈린다. 4차선 도로 위쪽엔 잘 정비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고, 아래쪽은 서민 주택가다. 나영이네가 사는 다세대주택은 골목길 아랫동네에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전형적인 서민 주거지였다.
4
아동 성폭력은 가난한 집 아이부터 노린다. 13세 이하 성폭력 피해자의 다수가 생계에 바쁜 부모로부터 방치되는 사회적 약자 계층 아이들이다. 나영이 사건 역시 형사(刑事) 문제인 동시에 '빈곤 이슈'다. 나영이는 매일 아침 문제의 골목길과 교회 건물 앞 사각지대를 지나 학교에 다녔다. 나영이뿐 아니라 아랫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대개 이 지름길을 이용했다. 조두순이 골목길을 지키고 있던 그날 아침, 나영이가 아니었더라도 아랫동네 아이 누군가는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나영이에게 미안해 고개 들 수 없는 세상 사람들은 짐승 같은 범인에게만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학교 앞 사각지대를 방치한 우리 어른들의 무심함 역시 공범(共犯)이었다. 현장에 가보고 그걸 알았다
.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조두순사건이 발생하게 된 배경은 명확해졌다. 1차적인 것은 조두순의 광기다. 인륜을 저버린 범죄자의 책임이다. 그 다음은 빈곤이다. 기자의 “빈곤 이슈‘라는 말은 틀림없이 맞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한다. 누구나 알듯이 ’빈곤의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그 사각지대를 만든 것은 국가와 정부의 책임이다. 어른들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 CCTV 숫자나 방범초소, 가로등 숫자만 비교해보자.
서울의 강남과 강북만 비교해도 차이가 난다. 잘살고, 잘 나가는 지역에는 감시의 눈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지만 빈곤지역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정부는 책임을 분명하게 져야 한다. 나영이나 어린 학생들이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등,하교길의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하루하루 끼니 때우듯 밥벌이 지친 사람들의 환경의 팽개쳐 있는 것 아니가. 이게 바로 성장일변도의 우리 시대 자화상이다.
그런데 정부는 어떠한가? 조두순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한다는 것이 고작 아동성범죄자의 형량을 늘리는 정도다. 아동성범죄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도 필요하지만, 아동성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조두순 사건의 현장을 다녀와서 쓴 기사 대부분은 공감한다. 하지만 분명하게 국가와 정부의 책임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점점 더 벌어지는 빈곤격차를 줄이기 위해 분배의 문제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결론지어야 한다. 더불어 함께가 아니라 따로 따로 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성장일변도의 정부정책을 비판해야 한다. 아울러 조선일보 데스크진의 제목 뽑기 또한 경악스럽다. 전혀 경악스럽지 않은 글을 경악으로 몰고 가는 수준이 참으로 밉다. 조두순 사건은 국가와 정부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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