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축구선수 베컴에 뒤지지 않는 인기를 누린다는 천재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 갓 스물이 넘었을 때 금발을 휘날리며 해사한 얼굴로 TV요리쇼에 등장한 이후 삽시간에 왕실 훈장을 받을 정도로 거물이 되었다. 내놓는 책과 TV쇼마다 족족 성공했으니 이제 부와 명성을 즐기며 살아가는 일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즈음 제이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행한 일은 고급 레스토랑 경영도 아니고 요리학교 건립도 아닌,‘학교 급식 개선 프로그램’이었다.
국내에서도 방영된 바 있는 <제이미 올리버의 스쿨디너 : Jamie Oliver's school dinners>는 형편없는 학교 급식 때문에 무너져가는 아이들을 구하려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다.
기름이 줄줄 흐르는 치킨너겟, 감자튀김, 치즈인지 고무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것이 달랑 한 장 끼워진 샌드위치. 한국 급식에 대한 불만이 순간 날아갈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영국 급식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장 무서웠던 장면은 급식 메뉴에 초코바가 등장할 때도, 아이들의 건강 따위 아랑곳 않고‘한 끼 당 무조건 37펜스 이하로’를 외치는 학교 관계자의 표정도 아니었다. 그 형편없는 음식을 맛있어 하며 점심마다 치킨너겟 몇 십 개를 삼키는 아이들이 제일 충격적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나쁜 급식’은 자동으로‘나쁜 입맛’을 심음으로써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을 파괴하게끔 몰아가고 있었다. 급식에 사람들이 예민해하는 데도 다 이유가 있다. 한마디로 급식은 식습관을 좌우한다. 입맛을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잠깐. 육류 일색의 식생활 때문에 나날이 문제가 많아지고 있는 지금, 급식은 안전한가?
직 장
1. ㄱ공단 : 공기업, 직영
하루 세 끼가 모두 제공되며 점심은 A, B 두 가지 메뉴를 준비하고 있어 하루 4가지 식단이 마련되는 셈. 주변에 있는 다른 회사원들이 원정 식사를 올 정도로 맛에 대한 만족도는 컸다.
육류가 등장하지 않는 끼니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소고기의 경우 국내산은 전무했다.
2. S사 : 방송국. 직영.
업무 자체가 불규칙하므로 주말도 운영하는 등 급식의 중요성이 높은 편. 직원들의 만족도는 대체로 좋다.
아침과 점심이 A, B로 나뉘어져 있어 하루 5가지 식단이 마련된다.
하루 중 육류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메뉴가 반드시 한 번은 등장했다. 아침에는 달걀프라이와 청국장을 자율 배식으로 놓아 선택할 수 있었다.
학 교
1. ㅇ초등학교
일품요리나 메인 요리가 있기 보다는 반찬이 골고루 나오는 편.
2. ㅁ초등학교
군 부 대
군대에서는 주간 단위의 식단이 외부로 공개되지 않으며, 매달 부대 단위로 급양대에서 회의를 거쳐 메뉴를 결정하는 게 보통이다. 하루 열량 3천 300kcal를 기준으로 하고 있고 부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4가지 반찬이 나온다. 지급되는 반찬의 종류와 양은 대부분 정확한 지침이 있다. 그래서 작년 5월 장병 지급 소고기량이 하루 35g에서 15g으로 줄었을 때는 뉴스화되기도 한다.
버려지는 음식을 줄이기 위해 메뉴는 점점 더 서구화되고 있는 편이다. 신병훈련소를 보면 한 달에 돈가스 네 번, 소고기불고기 세 번, 돼지불고기 세 번, 소시지 네 번, 닭튀김 네 번, 생선가스 두 번, 햄버거 여섯 번 등 육류 요리를 자주 내어놓고 있다.
급식 메뉴 어떻게 정하나?
위탁이냐 직영이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급식 메뉴는 대략 이런 과정을 거친다.
학교는 ‘학교급식법’을 따르고 그 안에 위생, 안전, 영양기준이 모두 마련되어 있다. 영양기준은 물론 각 영양소별로 세세하게 수치가 정해져 있어 약간의 변동은 가능하지만 철저히 지켜야 한다.
메뉴는 전담영양사가 짜며, 이때 급식 대상에 따라 총열량과 영양소 수치를 전용 프로그램에서 산출하기도 한다. 한 기업체 직영 구내식당 영양사인 정해옥씨는“영양사들의 커뮤니티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어서 식단을 짜는 데 필요한 프로그램부터 레시피 공유까지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하고 말한다. 다만 육식과 채식의 비율에 대한 질문에는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아직까지 ‘고기가 없으면 섭섭하다’는 이용자들이 대부분이라 야채 중심은커녕 해산물 비율만 높여도 불만이 터져 나오는 지경이라는 것. 메뉴 선호도와 잔반 비율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보니 아무리 건강에 좋다 하더라도 급격히 채식 위주로 돌아설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채식이 몸에 좋다는 이론도 있지만, 아직 영양학계의 주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양사들이 배워온 이론과 채식 단체 혹은 환경론자들의 채식론에는 많은 간격이 있다는 것이 영양사들의 중론이다.
두 가지 대안
그렇다면 영양학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누군가 채식 연구로 노벨상을 탈 때까지 육식위주의 급식을 유지해야 한단 말인가? 다행히 두 가지 대안이 서서히 대두되고 있다.
첫째는 친환경급식. 최대한 많은 식재료에 국내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하고, 가공식품을 거의 쓰지 않는 급식 메뉴를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제주도의 아라중학교는 이런 친환경급식의 대표적인 학교다. 김치를 학교 내에서 직접 담그고 친환경농산물 또한 제주도 안에서 자란 것을 우선으로 선택한다. 밥도 흰 쌀밥이 등장하는 날은 드물다. 육류도 종종 나오지만 녹황색 야채를 위주로 메뉴를 생각하는 터라 전반적으로 훨씬 건강한 식단이다.
둘째는 식생활에 대한 교육이다. 앞의 <스쿨디너>프로그램에서 말했던 영국 어린이들은 매일 감자튀김을 먹으면서도 감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이런 추세는 다른나라들도 마찬가지인지라 일본에서는 이윽고 2005년 ‘식육법’을 제정해 시행하기 이르렀다. 우리나라도 지난 5월 식생활교육지원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올 1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공장형 축산의 문제는 무엇인지, 가공식품에 얼마나 많은 첨가물이 들어가는지, 야채가 어떻게 인체를 정화시켜주는지… 바른 식생활 교육을 받은 이들은 음식을 선택하는데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인다고 한다. 음식을 단순한 소비재로 취급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로 보게 되는 것이다. 단지 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만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작은 신호를 보내는 일임을 알게 된다. 그런 깨달음이 결국은 환경을 파괴하는 육식 위주의 식생활에서 벗어나고 급식에서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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