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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밥

아듀 2009년,노무현과 “꽃상여 타고“

by 밥이야기 2009.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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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자를 수 있을까요? 더 슬퍼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슬픔을 딛고, 희망과 연대의 길로 가자고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간직해야할 슬픔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더 슬퍼하고 절망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가슴에 칼이 돋고 슬픔을 자를 수 있습니다. 절망을 넘어 설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 하지만 2010년은 망각의 강에서 나와 현실의 파고를 넘어서야 합니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는 홍기선 감독의 영화 제목이자, 안치환이 부른 ‘꽃상여 타고’의 가사 중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새해를 앞두고, 덕담을 나누고 행복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사람들은 절망하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삶의 현장에서, 성냥갑 같은 단칸 지하방에서 홀로 기나 긴 겨울밤을 새우잠으로. 2009년의 인물은 노무현. 노무현 이름 석 자를 떠올릴 때마다, 후회를 많이 합니다. 노무현 대한 후회가 아니라 살아온 한 개인의 삶을 뒤 돌아 보게 만들었습니다. 노무현은 원칙주의자였습니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연하지 못했습니다. 유연하다는 것은 보기에 따라 좋게 들리겠지만, 현실과의 적당한 타협이라는 이중적 함의가 담겨있지요. 노무현의 원칙은 미완의 민주주의였습니다. 민주주의를 완결된 개념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진보를 위한 진보의 원칙에 묶인 진보주의자들에게는 민주주의는 사치로 보이겠지만, 국가와 제도의 틀을 벗어날 수는 없는 일. 민주주의는 진행형이며 끝없이 보완하고 이루어 나가야 할 과제로 보지 못했습니다. 진보의 미래는 없습니다. 진보는 일상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내는 실천 과정입니다.

 

노무현이 지방으로 농민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그 길 하나 만큼은, 사람에 대한 사랑 하나 만큼은 배워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큰 정치는 작은 정치입니다. 큰 것만 보면 결코 진보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장일순 선생은 오래 전에 ‘열린 운동’을 간파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고개 흔들며 이해했지만, 받아들여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열린 운동은 성실하게 우리 스스로 살아가고 이웃도 그렇게 살아가게 권하고 이런 과정 속에서 남들이 스스로 살기를 원하면 살게끔 도와주고 그렇게 해서 숨통이 트여 가는 그런 운동이 돼야 합니다."

 
노무현은 꽃상여 타고 갔지만, 이제 살아남은 자들은 민주주의 꽃을 만개시켜야 합니다. 매일 매일의 민주주의. 2010년은 그렇게 슬픔을 간직하고, 가슴에 돋는 희망으로 연대해서 지방자치 선거에서 희망을 이루어 내어야 합니다. 승리란 있을 수 없습니다. 끝없는 여정과 사람 사는 길이 어떤 길이지 살피고 보듬어 가야합니다.

 

꽃상여 타고

꽃상여 타고 그대
잘 가라

세상에 궂은 꿈만
꾸다 가는 그대

이 여름 불타는 버드나무
숲 사이로

 
그대 잘 가라 꽃상여 타고
그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어이어이 큰 눈물을
땅 위에 뿌리며,

 
그대 잘 가라
꽃상여 타고

 
- 양성우 작사 / 안치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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