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은 너무나 잘 알 것 같다. 생각해보자. 오 시장은 임명직이 아니라, 서울 시민의 소중한 투표로 당선되었다. 서울 시정을 잘 꾸려가보라고 다시 맡긴 자리를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위해 올인에 바쳤다. 과연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서울시정의 핵심과제인가. 복지 포퓰리즘을 외치며 맞선 오 시장의 포퓰리즘. 서울 시정사에 길이 남을 예산 낭비 사건으로 기록될 것 같다. 오 시장의 재신임 투표가 되어버린 무상급식 주민투표.
소설가 김훈은 ‘책임질 수 없는 책임’이라는 글을 통해 이야기 한다. 가슴을 저미게 하는 글이다. “ 돌멩이라도 소화시켜내는 청소년 시절에 점심을 못 먹는 고통은 죽음과 흡사할 것이다. 배가 고프면 청운의 꿈이고 ‘Boys, be Ambitious'고 뭐고가 없는 것이다. 성립되지가 않는다. 배가 고파서 눈앞이 노란 아이들을 붙잡고 무슨 교육이 가능할 것인가. 이런 아이들이 학교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이 갑자기 무더기로 점심을 굶고 곯아야 하는 사태가 과연 누구의 책임이냐! (중략) 배가 고파서 쩔쩔매는 아이들 앞에서 이 사회는 도데체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져봐야 목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못하고, 책임지워지지 않는 굶주림은 계속 될 터이다. ”
김훈은 책임의 소재를 따지는 고담준론의 명성한 이론보다 구세군 냄비에 천원을 넣은 것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글을 끝맺는다. 그렇지만 나는 천원을 넣고 싶지 않다. 천원을 넣는 기부행위는 아름답지만 책임은 끝까지 따져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원의 기부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자활이나 사회적 약자의 무상지원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한다. 돈만 지원하면 망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른바 ‘고기론’이다. 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자는 뜻이다. 좋은 말이지만 틀린 말이기도 하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굶는 것을 외면하면서 사회적 기업이나 ‘고기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 굶어 본 사람들이 굶은 사람들의 심정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오 시장도 어렸을 때 가정이 힘들었으니 굶어 보았을 것이다.
소설가 이외수는 경우가 다르지만 너무 배가 고팠던 시절, 얼어붙은 찬밥을 깨어서 먹었다고 한다. 여름철이 아니라 칼바람 가슴에 꽂히는 겨울철이었으니 얼마나 몸이 후들거렸을까. 굶는 아이, 차별 속에서 배를 채워야 하는 제도를 바꾸자는 것이 왜 문제인가. 부자집 아이 가난한집 아이 구분하지 말고 자날 때까지만은 똑 같은 점심 먹이자는데, 점심의 질을 높혀보자는데 그걸 목숨 걸고 막으려는 이유를 알 길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꼼수는 치명적인 악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 시장은 기자회견장에서 " '참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데 한 알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해도 더 이상 후회는 없다 "고 말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야 자라나는 세대가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뿌리를 뽑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