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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밥

블로그시대,사진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by 밥이야기 2009.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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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War Photographer 2001(홈페이지 들러보기)


세계 곳곳의 전쟁터와 빈곤의 현장을 누비며 사진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사진의 거장 제임스 낙트웨이(James Nachtwey - 미국, 1948년생 ). 낙트웨이의 활동상을 담은 다큐멘터리영화(War Photographer)를 보면서, 사진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커진 웹2.0시대. 사진에 대해 같이 생각을 나누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의 아마추어리즘시대 열리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무너진 대표적인 분야가 사진이다. 배경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디지털카메라의 대중화다. 필름카메라(아날로그)의 시대를 디지털이 대체하면서, 카메라는 사치품이 아니라 일반 기호품이 되었다. 휴대폰의 보급과 함께 카메라는 휴대성과 기능이 날마다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카메라가 전문가나 애호가의 사치품으로 남았다면 아마추어리즘의 문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는인터넷의 발전으로 웹2.0기반의 블로그가 활성화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기자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림으로써, 사진은 블로그와 발맞추어 프로의 아성을 시나브로 무너뜨리고 있다.

이미지시대. 사진은 텍스트를 보완하는 장치가 아니라, 텍스트가 사진을 보완할 정도로 사용범위와 이용자층이 넓어졌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시대.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 올라가면, 어떤 사진은 입소문 퍼지듯 세계 곳곳을 누릴 수 있다. 그 만큼 사진은 이제 웹2.0시대의 필수도구가 되었다. 아날로그의 시대의 필통에는 연필과 지우개가 있어지만, 멀티미디어시대의 필통에는 컴퓨터와 카메라가 있다.

 사진이 대중화됨으로써, 역기능 또한 존재한다. 카메라는 이제 어디서나 사람들을 감시하는 통제의 수단으로 이용된다. 이른바 파파라치로 대변되는 전문사진고발꾼의 직업을 양산시켰다. 사진은 현실발언의 도구이자, 현실왜곡(혹은 상업화)의 두 가지 기능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진의 순기능을 잘 살린다면 사진은 현실에 대해 발언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이다. 제도 언론이 담지 못하는 장면을 포착해내어 어떤 말과 글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기성 제도언론이 담지 못하는 사진을 찾아

현실을 제대로 알리는 사진들은 점점 일반 언론매체들이 받아들일 공간이 없어질 것이다. 산업집중화에 따른 언론의 기업화는 사회의 이면을 들추는 사진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광고에 의존하는 매체들의 경우, 기업에서 어떤 지면을 더 원하겠는가. 현실의 문제를 있는그대로 고발한 사진을 회피 할 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블로그나 인터넷의 사진사이트들은 기성언론이 담지 못하는 사진을 보급하고 알리는 창구역할을 자임하게 될 것이다.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과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면, 사진 한 장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동어반복의 글보다 사진 몇 장이 호소력있게 다가온다. 촛불시위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국면에 사진은 그 기능과 역할을 발휘했다. 사진은 찍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열정에 따라 진실성을 획득하다. 대상을 단순한 피사체나 도구화의 관점에서 담은 사진은 사진으로써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저명한 문화비평가였던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을 담은 사진을 경계했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지구 반대편의 고통이 다른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에게 일상의 구경거리로 치부될 수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다시 말해 사진 찍는 사람의 자세와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인의 불행을 사진을 통해 이용해서는 안된다.

 세계적인 전쟁 사진작가 제임스 낙트웨이(James Nachtwey). 그는 20년 넘게 전쟁과 분쟁의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사진을 찍었다. 전쟁터를 넘어 빈곤의 현장까지 발을 넓히고 있는 사진작가 낙트웨이는 이야기 한다.

제가 보는 것은,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고통과 정의롭지 못하고 불행한 상황입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한 번만 와 볼 수 있다면, 흰색 인(燐)이 아이의 얼굴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총알 하나가 얼마나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 주는지,파편 조각 하나가 어떻게 사람의 다리를 잘라 버릴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공포와 슬픔을 한 번이라도 겪어볼 수 있다면,그들은 이해할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수천 명에게 일어나고 있는 한, 어떤 것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진가가 거기에 갑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던 일을 멈추고, 지금 벌어지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강력한 이미지로써 대중매체의 희석작용에 맞서고, 사람들을 무관심으로부터 끌어내리기 위해서입니다. 또, 항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저항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도 저항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 제임스 낙트웨이, War Photographer 중에서

<왜 전쟁사진을 찍는가? James Nachtwey >

총알이 야기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혹은 포탄의 날카로운 파편이 다른 사람의 다리를 잘라내는 광경을 직접 본다면  누구라도 그러한 두려움과 비탄을 단 한번만이라도 전장에서 직접 느낀다면 수천명은 말할것도 없이 단 한명에게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전장에 가볼 수는 없으며 그런 이유로 사진사들이 전장에서 강렬하고 설득력있는 사진을 찍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매스미디어의 피상적인 정보와 무관심에서 벗어나 전장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고 전쟁에 항의하도록 한다. 가장 나쁜 일은 사진사로서 다른 사람의 비극에서 이익을 얻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생각은 늘 나를 괴롭힌다. 순수한 연민이 개인적인 욕망에 뒤덮이는걸 용납한다면 나의 영혼을 팔게 되는 것임을 알고 있으므로 매일 아침 나는 이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가능한한 최대한 대상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노력한다. 외부인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인간애에 어긋나는 일일 수 있다. 나의 입장을 내가 정당화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존중하는 것이다. 내가 존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고 또 그 만큼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


제임스 낙트웨이


제임스 낙트웨이 작/1994년 르완다(르완다의 참상을 알린 대표적인 사진)



블로그 시대. 사진은 이제 현실 발언의 도구이자 멀티미디어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써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는 아직 전쟁 중입니다. 전쟁이 일년 중에 일어나지 않는 날은 한달도 채 되지 않습니다. 아니 전쟁이 아니라 빈곤과의 전쟁,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세력과의 총성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웹2.0의 공유,연대,참여의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사진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커진만큼 사진을 어떤 마음과 자세로 담을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제임스 낙트웨이 주요 사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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