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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밥

영화 속 술자리,한국인의 놀이와 술판

by 밥이야기 2009.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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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복이 쓴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과 영화감독 홍상수




정수복이 쓴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에는 홍상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얘기가 사례로 나온다. 600페이지에 이르는 예사롭지 않은 책을 잠시 덮었다. 정수복은 한국인의 근본적 문법 중에 하나인 ‘감정 우선주의’의 예를 들며 한국인의 ‘놀이와 술판’에 대해 얘기한다.

 ‘정이 많은 한국인들은 혼자 있기보다는 함께 있기를 좋아하고 함께 모이면 조용히 대화를 즐기기보다는 놀이와 술판을 즐긴다. 상다리가 휘도록 음식을 차려놓고 술을 원수처럼 퍼마시다가 고래고래 노래하고 춤을 추며 난장판으로 놀아야 직성이 풀린다...(중략). 한국인은 술에 의해 망아적 상태에 이르고 그 상태에 이르고 그 상태에서 너나 없는 깊은 인간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2차,3차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마셔서 나는 없어지고 술만 남아야 그 동안 쌓였던 감정이 해소되고 끈끈한 정이 생기고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정수복,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118쪽)

 필자도 술 이력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이 글을 읽고 나니 ‘왠지 낯이 뜨거워진다..’그럼 이제부터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술자리’를 다시 엿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예전에 영화판에서같이 일했던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가 기억 난다. 홍감독하고 술을 마시면서 가십거리로 술안주로 올렸던 말과 행동들은 영화에 그대로 녹아난다고. 일상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내는 홍상수 감독의 기억력을 조심해야 한다고. 개인의 가십거리 이야기가 영화에 나오는 것도 재미는 있겠지만?

구효서의 소설 ‘낯선 여름’을 원작으로‘‘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연출.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일상의 커튼을 열어버린 홍상수의 장편영화 데뷔작. 일상의 언어와 풍경이 얼마 전에 일어난 현실같이 재현된 영화를 보고나면 어쩔 때는 공포영화도 아닌데 등골이 오싹해진다. 영화 속 장면은 스멀스멀 관객의 머리를 비집고 들어와 잊힌 기억을 들추어낸다. 영화는 컬러인데 무덤덤한 흑백영화와 색 바랜 사진을 보고 있는 듯 한 느낌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술자리 장면을  출연배우들한테 한 수 가르쳐 주고 있는 홍상수감독.

 
“엇,이거 내 얘기 아니야” 홍상수 영화로 들어가 ‘술독에 빠지다 보면’ 어느 순간 영화 속 인물들은 내가되고 우리가 된다. 술집에서 싸움을 하고, 넋두리를 풀어내고, 여자를 만나고, 술에 취해 허우적거리다 보면 영화는 끝나버리고. ‘강원도의 힘’은 술을 마시며 비디오로 보아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렇다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볼 자신은 없고. 술은 강원도 힘에서 다양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교수가 되기 위해 ‘명품 술’을 헌납하고, 술을 마시면서 기억이 교차하고 분열되고...

술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영화인 셈이다. '오! 수정’에 등장하는 종로 막걸리 집 풍경은 술질 벽에 갈겨진 낙서의 흔적처럼 실타래처럼 꿈과 추억이 얽혀있는 장소. ‘오! 수정’을 기억하면 막걸리 집을 찾은 사람들도 꽤 있을 것 같다. 필자도 30분을 기다리는 인내를 발휘하며 술을 마셨으니.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술판을 중심으로 한 한국인의 감정우선주의를 스크린 위에 객관화시킨다.<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강원도의 힘>을 거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해변의 여인>에 이르기까지 홍상수영화에는 술을 마시는 장면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의 영화에는 한국인의 술을 통한 정서적 관계의 형성과 비합리적 의사 소통방식이 여실히 표현되고 있다. 그의 영화를 주의 깊게 분석해보면 술자리에서 분출하는 한국인의 감성폭발 현상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술에 취해 너나없이 하나가 되는 현상은 어떻게 보면 무당이 무아경상태에 들어가 신과 깊은 관계를 맺고 하나 되는 상태와 유사하다.’(정수복,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118쪽)

어제도 오늘도 수많은 술판이 벌어졌다. 내일도. 싸움이 일어나고 화해가 이루어지고 사랑이 떠나고 오고 슬픔과 행복이 교차하고 음모와 부패의 끈이 이어지고 끊겨지는...술자리에서 모든 것들이 소통된다면 좋을 터인데, 현기증 나는 현실의 해는 숨지 않고 뜨겁게 떠오른다. ‘술자리에서 얘기 한 것은 말짱 도루묵’ 하면서 도루묵은 계속된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지난 술자리의 실수를 더듬어 내기에는 하루는 너무 빨리빨리를 재촉한다.

 감정우선주의도 좋지만 ‘깨어 있을 때’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대화가 필요 하다. 사는 공이 되고, 공은 사가되는‘공과 사’를 폭탄주처럼 섞어버리는 술자리문화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상납, 사회 비리의 마중물은 단힌 술자리에서 나온다.



<홍상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속 술자리 장면/슬라이드 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