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19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극비 명령 사연이 공개됐다. 중국 마오쩌둥과 관련된 이야기. 시청하면서 마오쩌둥의 지난 삶이 토막 토막 이어졌다. 1893년 중국 후난성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며 자라난 평범한 아이였다. 1912년 혁명군에서 제대한 뒤 제1중학에 입학하였으며, 다시 제1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대학 공부나 외국 유학을 하지 못한 그는 이 학교에서, 영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중국의 봉건사상 비판에 힘썼던 교사 양창지[楊昌濟]를 만났고,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후 1920년 상하이[上海]에서 천두슈[陳獨秀]를 만났으며 다시 창사로 돌아와 1924년까지 창사 제1사범학교의 부속소학교 교장 겸 사범부의 어문(語文) 교사가 되었다. 1920년 겨울 양창지의 딸 양룬후이[楊閏慧]와 결혼하였고, 1921년 7월 상하이의 중국공산당 창립대회에 참가하였으며, 후난성 대표로서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 출석하였다. 대단한 인물, 분명하다? 아무튼 서프라이즈 통해, 1949년 소련 모스크바, 한 실험실에 비밀리에 모인 사람들. 그들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 마오쩌둥의 대변이었다. 그 사연은? 소련을 방문한 마오쩌둥. 마오쩌둥은 스탈린과 회담을 통해 중소 동맹 조약을 새로 맺고자 했다. 마오쩌둥이 집권하기 전인 1945년 이미 체결된 동맹 조약은 다소 불평등한 조약이었다. 마오쩌둥은 소련과 다시 동맹 조약을 맺길 원했고, 이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 중요했다. 하지만 소련이 순순히 마오쩌둥의 요구를 받아들일리 만무했다. 스탈린은 마오쩌둥의 숙소를 허름한 곳에 마련하며 푸대접했다. 마오쩌둥은 숙소에서 스탈린을 기다리는 동안 엄청난 양의 음식과 술을 제공받았다. 그는 숙소 밖에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한채 하루 종일 음식을 먹고 밤낮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실제로 당시 화가난 마오쩌둥은 "먹고 싸러 이곳에 온 게 아니다"고 외쳤다고. 그로부터 67년 후 뜻밖의 의견이 제기됐다. 스탈린이 철저하게 마오쩌둥과 회담을 준비했고, 회담에 앞서 스탈린이 마오쩌둥의 대변을 분석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극비문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스탈린은 대변을 통해 사람의 심리를 알 수 있다는 루머를 듣고, 마오쩌둥의 대변을 분석한 것. 이에 스탈린은 마오쩌둥의 숙소 화장실에 특수 장치를 설치해 마오쩌둥의 대변을 따로 모았다. 또, 일부러 마오쩌둥이 스트레스를 받게 하기 위해 푸대접했고 엄청난 양의 음식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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