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밥

"나영이에게 꽃을 던지지 마세요"

by 밥이야기 2009. 10. 1.
728x90





- 나영이사건을 통해 바라본 성폭력

 


 ▲13세 때 성폭력을 당한 현대미술의 거장 니키드 생팔의 작품
  총이 아니라 물감총으로, 누구를 향해 쏘았을까?



‘나영이 사건’을 나영이 사건으로 부르지 말자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나영이의 이름이 가명이라 하지만, 나영이 사건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이름(조두순 사건)으로 심판받아야 합니다. 아동 성범죄자의 이름은 원래 공개되게 되어있습니다. 물론 논란의 여지는 많습니다. 인권의 측면에서 보면 누구나 개인정보는 보호 받아야 합니다. 가해자가 되었건, 피해자거 되었건.

 

KBS ‘시사 기획 쌈’을 통해 나영이 사건이 다루어지고, 가해자의 법원 판결(낮은 형량)에 네티즌들이 여론재판을 시작했습니다. 성범죄자 그중에서도 아동 성범죄자는 이제 법 밖에서 사회적 심판을 받아야 할 정도로 바글바글 끓고 있는 냄비를 벗어 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나영이 사건과 여론재판을 보면서, 나영이 사건의 시작을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하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넓은 의미로 보면 나영이 사건의 본질은 ‘성’의 문제입니다. 성폭력의 입장에서 나영이 사건을 바라보아야지 보다 근원적인 처방을 내릴 수 있다고 봅니다. 성폭력은 그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누구도 성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요. 성폭력을 파고들면 전쟁과 폭력의 역사, 남성 중심의 사회, 정신질환, 페미니즘사상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왜 조두순은 나영이를 성폭력해야 했을까요? 술을 마셨다는 신체허약 상태가 법원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술과 마약은 성폭력의 근원입니다. 맨 정신에 성폭력을 저지른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요. 영화 피아니스트의 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32년 전에 저지른 13세 소녀 성폭행사건도, 음주가 배경입니다. 술 취한 상태 넘어에는 개인적인 삶의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 배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거지요. 가정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저지른 폭행을 보고 자라난 자녀의 정신 상태는 어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표출됩니다. 아버지를 따라 할 것인가(여성 비하), 아니면 아버지를 경멸 할 것인가?

 

프랑스 출신, 누보레알리즘의 거장인 여성화가 니키드 생팔은 여성과 성을 테마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생팔이 세계적인 화가가 된 배경을 살펴보면 13세 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성폭행사건이 있습니다. 생팔은 말합니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권력은 남자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 그 자유를 내 것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나영이 사건의 가해자는 사법부의 형량을 넘어 혹독한 사회적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살아남은 자의 길과 살아 갈 길이 먼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해 보다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합니다. 국가와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성장지상주의의 사회에서 가정과 ‘더불어 함께’라는 공동체교육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을 넘어선 대안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폭력과 아동성범죄를 예방하고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성전담 수사반, 성교육, 양성평등 등)와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입니다. 가정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제2의 제3의 나영이 사건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과연 현실은 그런 것인가?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영이 사건을 통해 본 여론재판은 그런 의미에서 보다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합니다. 사형을 시키느냐, 법의 잣대를 넘어서서 보다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나영이 사건과 냄비성 여론재판 속에는 누구나 나영이는 나의 딸이며, 친구이며, 아내이며, 형제자매라는 감성적인 속내가 배여 있습니다. 당연하지요. 이제 나영이 사건을 넘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지나갔던 잊혀져간 사건과 나영이 못지않는 성폭력사건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13년간 폭력을 당하다가, 탈출해서 여성폭력문제 해결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폴렌트 켈리의 ‘저는 오늘 꽃을 받아었요(Today, I received flowers)’라는 시를 소개시켜 드리며 글을 맺을까 합니다.

 

"나영아, 고통을 넘어 니키드 생팔과 같은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니키드 생팔 작품. 여성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관람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생팔은 이 작품을 통해 성의 근원과 성폭력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제 생일이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지난밤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지요
그리고 그는 잔인한 말들을 많이 해서 제 가슴을 아주 아프게 했어요
그가 미안해 하는 것도,
말한 그대로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도 전 알아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우리의 결혼 기념일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요
지난밤 그는 저를 밀어붙이고는 제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마치 악몽 같았어요
정말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지요
온몸이 아프고 멍 투성이가 되어 아침에 깼어요
그가 틀림없이 미안해 할 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그런데 어머니날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지난밤 그는 저를 또 두르려 팼지요
그런데 그전의 어떤 때보다 훨씬 더 심했어요
제가 그를 떠나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아이들을 돌보죠?
돈은 어떻게 하구요?
저는 그가 무서운데 떠나기도 두려워요
그렇지만 그는 틀림없이 미안해 할 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어요
바로 제 장례식날이었거든요
지난밤 그는 드디어 저를 죽였지요
저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했지요
제가 좀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서 그를 떠났더라면
저는 아마 오늘 꽃을 받지 않았을 거예요

 


* 공감하시면 아래 손바닥 추천 클릭 -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