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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밥

김예슬, “나는 오늘 대학을 거부 한다”

by 밥이야기 2010.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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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예슬 학생이 글을 남기자, 많은 학생들이 다가와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고 합니다(사진출처)



어제 늦은 밤 한 블로거가 올린 김예슬 학생이 쓴 글 전문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어쩌면 80,90년 학생운동으로 제적 당하거나 자퇴를 권유 받은 것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고려대학교에 다니는 김예슬 학생(경영학과3년)이 어제(10일)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 한다”라는 글을 남기고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했습니다. 자율과 창조성이 사라진 오늘날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김예슬 학생의 자퇴선언은
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만들어 낸 현실이라는 것을 서로 느껴보았으면 합니다. 지난 촛불 시위는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이전에 교육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김예슬 학생은 촛불 시위의 현장에도 자리를 지켰던 학생 중에 한사람이었지요.


 왜 김예슬은 대학을 그만두지 않고 거부한 걸까요? 김예슬이 남긴 글을 읽다보면 많은 생각에 잠기게 만듭니다. 한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들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수복씨가 쓴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란 책이 떠올랐습니다 . 한국사회는 외형적·제도적으로는 근대화를 이루었지만, 내면적·정신적 근대화는 아직도 미완의 상태에 있는 불구의 근대이며, 일그러진 근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수복씨가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통해 12가지 한국인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이야기 했지요.

 






저는 정수복 씨의 분류에 대해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연고주의, 권위주의. 속도지상주의 수단방법중심주의, 이중 윤리주의는 분명 대학생들에게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봅니다.

초, 중, 고부터 경쟁, 성적 지상주의. 그 그늘(입시지옥)에서 힘들게 빠져 나와 대학에 진학했지만, 한국의 현실을 바라보면 낙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 사람을 초조하게 만들어 창조적인 사고를 배워야 할 귀중한 시간들을 다시 취업경쟁, 자격증 경쟁 마당으로 내몰기 때문입니다. 김예슬은 말합니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이 공부한다는 것이 자기의 진실한 삶을 위해 수행하는 자세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고용되기 위한 공부가 되어버렸습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인텔리가 흔히 갖는 습관이 자격증을 가지려는 것이며, 체제든 반체제든 묶이면 자유를 잃는다라고 말씀하셨지요.


자격증의 시대, 속도경쟁지상주의, 김예슬의 대학 거부는 가볍게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기뻐 좋은 학창시절이 아니라, 슬퍼 자퇴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 김예슬 학생이 남긴 글 전문을 읽어보며.. 김예슬 학생이 우리 모두의 딸, 자식이라는 것을............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 이미지출처/경향신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
'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
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김예슬 학생이 던지 자퇴서가 한국 사회 교육문제와 대학의 현실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자퇴서는 학부모의 동의서가 없다는 이유로 반려되었지만
김예슬 학생이 선택한 길에 대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정부는 강한 나라를 이야기 합니다.
강한 나라는 경쟁이 아니라 협동과 자율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김예슬 학생의 자퇴는 상징일 뿐입니다.
많은 학생들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요.

김예슬 학생의 자퇴에... 응원의 꽃 한 송이 남기고 싶네요!!!
부모님들도 이해 해 주리라 믿고 싶습니다. 당신의 당당한 선택을....

죽은 시인의 사회, 죽은 교육의 사회
김예슬 학생의 선언아닌 선언으로 한국 교육문화가 변화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사람을 쓸데없이 초조하게 만들어 창조적인 사고를 배워야 할 귀중한 시절을 놓치게 만드는
등수 경쟁은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될까?...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돈이 아니라
부모의 시간이라는 것을 ...(고등어를 금하노라 중에서)"


* 참고 자료:고등어를 금하노라(독일에서 보내온 가족과 교육에 대한 이야기/임혜지/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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