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 체제 인사’.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동하는 지성이나, 실천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용기가 필요하다. 반체제인사라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살림이 꾸려진 사람인 경우 그나마 낫다. 그렇지만 가난을 무릎 쓰고 사회변혁가로 활동한다는 것은 이중고 일 수 있다. 가난과 탄압. 참여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반(反 )체제 인사’가 ‘반(半) 체제 인사’로 살면 된다. 반쪽의 삶은 주어진 틀 안에서 살고, 나머지 반쪽은 삶은 자신의 지향에 맞는 길을 택하면 된다. 물론 이런 삶도 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보다 행복한 삶의 질’ 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삶이 필요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민단체에 회비를 내거나 정당에 진성당원(당비납부)으로 참여해도 된다. 돈이 없다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블로그를 만들어 사회적 발언을 이어가도 된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지 않겠는가.
이제 참여의 힘은 20대에서 나와야 한다. 물론 취직 준비에 목매달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그럴수록 더욱 더 사회 참여에 앞장서야 한다. 국가나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 믿어서도 안 된다. 그렇기에 모바일 세대라 부르는 20대와 30대 초반의 사람들이 똘똘 뭉쳐 지혜의 그물코를 만들고 현실 발언을 해야 한다.
*이미지출처: 한겨레신문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높아졌을까? 분명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작년에 국민의 ‘삶의 질’을 계량화시켜 ‘국민행복지수’를 개발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국민행복지수 만들기도 주춤주춤 포기될 운명에 처했다고 한다. 만들어 보았자, 행복지수가 높을 이유가 없어서, 자포자기 한걸까?. 국민총생산, 1인당 국민소득이 높다고 행복지수가 높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세계의 경제석학들은 새로운 지수 모델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제대로 된 지수를 만들어 내기위해서는 환경, 복지, 교육 등 다양한 지표가 함께 들어가야 한다.
가난하고 소외 받는 사람이 잘 살아야지 부자도 더 잘 살 수 있다. 부가 있는 사람들은 나눔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사회갈등은 결국 빈부의 격차가 벌어질 때 깊어진다. 범죄율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서울 시장 출마선언문을 통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7개의 지향을 발표했다. 국민참여당은 국민주권을 세우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것을 정부나 정치권에서 해결할 수 없다. 참여를 통해서 사회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만이 시나브로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사회로 나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에 더 많은 반(反, 半체)제 인사들이 생겨나기를 기대하고 싶다. 정치에 환멸을 느낄수록 정치에 무관심할수록 사회는 기득권세력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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