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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밥

김정호, 노무현, 4대강을 떠올리며....

by 밥이야기 2009.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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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켠다. 다이얼은 언제나 고정되어 있다. 한 방송국의 FM 음악채널. 일년 열 두달 변함없이 최백호의 옛날식 다방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대부분 7,80년대 팝송이다. 오늘은 진행자가 박범신의 소설 ‘고산자’의 한 대목을 들려준다. 정확하게 받아 쓸 여유 없어, 대략 옮겨 보면 “ 고산자(대동여지도 김정호의 호). 지도는 길을 다스리고 알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도 함께 담겨 있다. 산과 강은 나라의 것이 아니다. 민초들의 것이다. 그렇기에 함부로 고치거나 파괴시켜서는 안 된다” 조금 각색해서 풀어 적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떠올랐다. 영토는 누구의 것인가. 국민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강과 땅, 산이 한 사람의 독선으로 인해 변화를 앞두고 있다. 그 변화는 누구를 위한 변화인가. 세종시도 마찬가지다. 이 변화에 국민의 뜻은 빠져있다.


소설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남긴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없다. 소설이 허구인 것처럼 김정호도 남긴 지도 이외는 다 허구다. 옛날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김정호가 흥성대원군에게 지도를 바쳤는데, 조정 대신들이 국가 기밀을 누설한 죄를 물어 죽였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삭제되었다. 김정호의 죽음을 둘러싼 의견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 친일사관이 유력하다. 일본은 지도에 민감했다. 일본 정부는 조선을 보다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가장 손쉬운 명분은 조선이 어리석은 나라이기 때문에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당연성을 부각하는 것. 조선 강토의 측지사업에 많은 도움을 준 김정호는 가장 구미에 맞는 인물이었다. 일본 정부는 김정호가 옥사하였다는 전설을 만들어 한국 정부의 무능과 김정호에 대한 고마움을 토로한 것이다. 한국을 식민지배하는데 김정호처럼 좋은 명분은 없었다는 뜻이다.

 
박범신의 소설 고산자에는 그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후대 사람들이 아무도 그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는데다가 평생 그 시대로부터 따돌림당했으니 그는 고산자(孤山子)요, 아무도 가지 않는 길,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에게 돌려주고자 하는 그 뜻이 높았으니 그는 고산자(高山子)요, 사람으로서 그의 염원이 최종적으로 고요하고 자애로운 옛산을 닮고,그 옛산에 기대어 살고 싶어했으니,그는 고산자(古山子)라고도 했다. 그의 이름이 김정호다.

 
고산자의 책을 따라 길을 걷다 보면 박범신을 만나게 된다. 박범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노 전 대통령을 보내며’.

 
“당신은 내가 아는 바,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곧은 분이셨고 가장 정직한 분이셨으며 가장 가장 깨끗한 분이셨습니다. 당신께서 이러저러한 비리에 연루되어 검찰에 불려나갈 때에도 나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어찌 나만 그랬겠습니까. 당신을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고 지금도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죽음에의 결단은 완전한 패배, 혹은 완전한 승리를 위한 통절한 반역입니다. 매일매일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고통에 찬 인생의 대장정을 감행하고 있는 ‘우리’와 ‘이웃’들이 당신의 결단을 완전히 이해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또 이해하고나서 그것을 실행하여 완성할 때까지는 더 많은 역사적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살아남은 우리는 우리들의 미친 욕망에 대해 사람다운 고삐를 걸어야 하고, 우리들을 숙주로 삼은 정신병리적인 앙갚음과 증오심의 뿌리를 뽑아내야 하며, 아직도 가난과 편견 때문에 비인간적으로 살고 있는 우리의 이웃과 더불어 살아남아 ‘통일조국’을 만들어야 하는 수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습니다.”(한겨레신문/박범신)

 
갑자기 봉하마을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를 아방궁으로 표현한 기사들이 떠올랐다. 김해 사저는 건축가 정기용 씨가 설계를 담당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가장 겸손하게 지어진 지붕 낮은 집이다. 정기용 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이렇게 표현해 담아 내었다.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귀향 이유로 “아름다운 자연으로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에서 농사도 짓고 마을에 자원봉사도 하고, 자연도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옛날 우리 조상들이 안채와 사랑채를 나누어 살았듯이,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할 때는 신을 신고 밖으로 나와서 이동하는 방식을 권유했다. 대통령은 흔쾌히 동의하셨다.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나라에서 권위주의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확장한 분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건축가는 안다. 건축주가 누구이며 집을 통해 무엇을 실현하려는지. “(한겨레 신문/정기용)

 
박범신은 고산자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고산자 김정호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이 함께 스쳐간다. “그가 그토록 지도를 만들 수 있는 힘은 어떤 결핍이 있어 그 결핍이 갈망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본원적인 그리움, 이룰 수 없는 꿈은 갈망이 되고 갈망이 순전한 마음이 되었을 때 그 순전한 마음이 오래갈 힘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갈망이 깊은 자는 절대 현실을 무시하지 않기에 지도를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만들어지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 함께 이루어도 모자랄 판에 일반적인 만들기가 조국 산하를 힘들게 하고 있다. 이 산하는 대통령 한 사람의 것이 아니질 않는가? 겸손과 배려는 없다. 디자인 대한민국은 겉만 요란하다. 거짓 선전과 홍보만 난무하고 있다.


오늘 글은 인용이 많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고산자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지 알 길 없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분노 때문인가, 한 사람의 외길 삶, 사무친 그리움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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